"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가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내 딸아 사랑한다."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오빠가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먹고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열차에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순간 희생자들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가족들에게 절절한 작별의 말을 남겼다.
■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한 대구지하철 참사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다. 1079호 전동차에서 50대 남자가 휘발유가 든 페트병에 불을 냈으나 역에 정차 중이어서 타고 있던 승객들은 대부분 빠져나갔다. 하지만 맞은편에서 1080호 전동차가 역에 도착하자 불이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당황한 기관사는 마스터키를 뽑은 채 대피했고, 불이 난지 모르고 앉아있던 승객들은 전기가 차단되고 문이 굳게 닫힌 열차 안에서 희생됐다.
■ 오늘로 꼭 10년을 맞은 대구지하철 참사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부상자 가운데 5명이 후유증으로 숨졌고, 60여명은 여전히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가매장 상태인 시신이 6구다. 당시 전국에서 답지한 710억여 원의 국민성금 중 남은 109억 원이 추모사업 지연으로 은행에서 잠자고 있다.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제자리 걸음이고 유족들간의 이견으로 추모행사가 제각각 치러지는 것도 안타깝다.
■ 사고 후 전국 지하철의 객차 내장재가 방염 처리되고 안전시설이 대폭 강화됐다. 그러나 참사 발생의 원인인 1인 승무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서울매트로(1~4호선)는 차량 앞뒤로 기관사가 2명 타지만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는 여전히 기관사 1명이 운전 중 발생한 모든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기관사들은 공황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하루 1,000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지금은 안전한가.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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