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는 곤란하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지적은, 말인즉슨 옳다. 따져볼 일이지만 그런 일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맥락 안에서 박 당선인의 저 지적은 옳지도 않고 설득력도 빈약하다. 내용을 시비하는 와중에 형식을 문제 삼는 것은 판을 호도하려는 해묵은 논변이기 쉽다.
내주 국무총리 내정자를 시작으로 줄줄이 이어질 새 정부 고위직 인사청문회는 후보 검증과 동시에 청문회 제도 자체의 형식과 내용을 국민 앞에 검증 받는 자리가 될 것이다.
우리의 기획은 13일 사퇴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두 마디 말에서 시작됐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앞으로는 새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2000년 인사청문회법 시행 이후의 낙마자들을 다시 주목하기로 한 까닭은,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했을 그들의 '다른 세상'에 대한 소회와 '새 삶'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청문회 자리에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지녀야 할 자계(自戒)와 절차의 허실을 묻고 싶었다. 현재의 그들은 우리의 요청에 의무로 답할 공직자도 아니고, 가혹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앞선 경험자로서의 소명의식이나 국민에 대한 부채감, 표나는 자리에서 여전히 돋보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기대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명의 사인(私人)으로 남길 원했다.
호응해준 이는 김병준(전 교육부총리) 국민대 교수가 유일했다. 그 역시 감정을 온전히 삭히지 못한 듯 간간이 언성을 높였으나 청문회 자체에 대해서는 힘주어 긍정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과거를 따지고 현재를 묻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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