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위 공직 후보자 검증 단계는 매우 복잡하고 철저하다. 백악관의 후보자 물색 및 자체검증 →복수 후보자 중 최종 후보자 낙점→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IRS)의 탐문조사→관계 기관의 신원조사→백악관의 최종점검→대통령의 지명 및 상원 인사청문회 등 총 6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정책 검증은 공개적으로 하되 사생활은 비공개로 검증해야 한다"며 미국 인사청문회를 그 예로 거론했는데, 이는 외부로 공개되는 마지막 단계만을 강조한 것이다. 일반에 공개되는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가 정책 중심으로 격조 있게 이뤄진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미 상원 청문회의 격조는 수개월간에 걸친 집요하고도 신뢰할 만한 사전 검증이 전제됐기 때문에 가능하다.
미국에서 행정부 고위관리나 연방 법관이 되려면 사생활과 관련한 혹독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FBI와 IRS 등이 예비후보자의 전과, 납세, 재산 등 233개 항목을 조사한 뒤 문제가 없는 경우에만 후보자로 공식 지명된다. 특히 도덕성이 중시되는 법관이나 법무부 공직자의 경우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 정치활동 여부, 가입단체 목록, 종교, 소득, 통장잔고 등 갖가지 개인정보를 상원에 제출해야 한다. 배우자나 자녀와 관련한 개인정보도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지명된 후보자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흠결이 드러나 사생활이 만천하에 까발려지고 낙마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다. 사전 검증에서 발견하지 못했거나 임명권자가 별일 아닌 것으로 간주했던 흠이 공개 검증에서 심판 받는 경우다. 이 과정에서 미 의회가 후보자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공개 검증을 소홀히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1989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국방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24년 상원의원 경력의 존 타워의 경우, 다수의 낙관과 달리 음주 습관과 여자관계 등이 문제 돼 상원 인준을 얻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톰 대슐 역시 사전 검증을 통과하고도 공개 검증에서 낙마했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10년이나 지낸 그의 발목을 붙든 것은 세금 미납과 후원자와의 유착 의혹이었다.
백악관 및 상원의 검증과 별도로 언론의 검증도 매우 활발하게 이뤄진다. 2008년 상무부 장관에 지명된 빌 리처드슨(지역구 기업 유착), 2004년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된 버나드 케릭(불법이민자 고용), 1993년 미국 첫 여성 법무장관에 지명된 조 베어드(불법이민자 고용) 등이 언론 검증을 못 버티고 자진사퇴했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이 이처럼 공직 후보자의 사생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한국에서처럼 "사생활 검증이 가혹해 쓸 사람이 없다"는 푸념을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 공직 후보자를 철저히 검증하는 상원이 장관 후보자 인준을 거부한 것은 1789년 이후 10여 차례에 불과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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