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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커피처럼 씁쓸한 우리네 삶과 이별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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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커피처럼 씁쓸한 우리네 삶과 이별의 순간들

입력
2013.02.1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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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현대문학사를 통틀어 대중 연애소설가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자리는 아마도 프랑수아즈 사강의 차지일 것이다. 열 아홉, 소르본대 재학 시절 쓴 첫 소설 이 그를 국제적 작가로 띄워 올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애가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고독과 허무, 우울과 환멸을 가볍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는 그의 소설들은, 흡사 팜므파탈처럼, 짐짓 점잖은 체하는 일급의 문학가들도 매혹했다. '마담 보바리'의 현대적 적통답게 그가 뿜어내는 프랑스산(産) 권태와 쿨한 삶의 태도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ㆍ소설 등 여러 서사 장르의 모태가 되고 있다.

결별을 주제로 한 19편의 단편을 묶은 (1975)는 사강이 마흔 언저리에 썼던 작품들을 모은 소설집이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출간됐다가 절판과 함께 종적을 감춰 그간 서적ㆍ골동품 경매 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책이다. 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혹은 가까스로 젊거나 겨우 아름다운 부르주아 주인공들이 겪는 다양한 결별의 국면들이 생의 아찔한 부조리를 일깨운다.

소설들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을 언어로 해제한 듯, 생의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 맞닥뜨린 뜻밖의 어떤 결정적 장면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골프를 치고 예정보다 일찍 집에 돌아온 아내는 남편의 불륜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 없는 침대 위의 방탕한 흔적들 앞에 망연자실하고('내 남자의 여자'),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남자는 혼미한 정신으로 길모퉁이 카페에 들어가 모든 손님들에게 술을 한 잔 쏘겠다고 외친다('길모퉁이 카페'). 지겨운 애인을 떼버리려 연 파티에서 본 여인의 무구한 표정 속에서 남자는 비로소 사랑에 빠지고('이탈리아의 하늘'), 남편은 다른 남자에게 정신이 팔린 아내의 손을 잡고 임종을 맞는다('누워 있는 남자'). 모두가 삶이 그에게 회복할 수 없는 따귀를 갈긴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사랑의 나무').

이 단편들의 일관된 주제인 결별은 격정적이지도 애통하지도 않다. 다만 치졸하고 비루할 뿐이다. '후회할 만큼 대단한 일을 한 적도 없는' 생애. 한 목표에서 다른 목표로, 한 침대에서 다른 침대로, 한 열정에서 다른 열정으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어영부영, 그러나 진심으로 쏠려 다녔던('길모퉁이 카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살아갈 일밖에 남아 있지 않은('이탈리아의 하늘') 사람들. 작가가 '슬픈 달, 슬픈 풍경에 맞는 슬픈 시간'('고독의 늪')이라 칭한 '11월 숲길에서의 오후 5시' 같은 인생들이 40년의 시차를 잊게 하는 데 아마도 사강의 현대성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작가 자신의 삶의 신조처럼,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은 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자신의 생에 '미래를 앞당기는 결단'으로 반전을 선사한다. 그 파국조차 건조하고 서늘하지만.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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