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기업이 내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은 국내 대기업집단의 대표적인 '몸집 불리기' 방식이다. 이 중에서도 이른바 '통행세'는 가장 질 나쁜 행위로 꼽힌다. 오너 일가의 지분이 많은 계열사가 계약 중간에 끼어들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득을 챙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 돈벌이인 탓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대기업 통행세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 금지'(제23조 1항 7호) 조항이 있긴 하지만,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계열사가 별다른 역할 없이 중간 수수료만 챙기는 통행세까지 규제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통행세 관행을 처벌한 사례가 사실상 전무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이번에 국회에 상정된 통행세 금지 법안은 대기업집단의 악질적인 불공정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통행세는 오너 일가의 지분이 많은 재벌 계열사가 별다른 기여 없이 다른 계열사의 거래에 끼어들어 수수료를 받는 행위를 말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롯데그룹 등을 중심으로 물류, 광고, 시스템통합(SI) 등의 분야에서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실제 공정위가 2011년 광고, SI 등 대기업의 내부거래 비율이 높은 4개 분야의 일감 몰아주기 실태를 점검한 결과, 대기업 계열사가 일감을 수주하고 계약금액의 10~20% 수수료를 챙긴 뒤 다시 중소기업에 맡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글로비스는 계열사들의 집중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매출이 29배나 치솟았다.
이 같은 재벌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공정위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12년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에 따르면 46개 대기업의 2011년 말 기준 총 매출액 1,407조2,000억원 가운데 계열사에 대한 매출액 비중은 13.2%(186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2010년 12%(144조7,000억원)에 비해 1.2%포인트(41조6,000억원) 증가한 수치다. 특히 전체 46개 기업집단의 총 내부거래금액 중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 상위 5개 집단의 비중이 70%를 넘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정위가 통행세 관행에 제재를 가한 건 지난해 7월 롯데그룹의 사례가 유일하다. 당시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피에스넷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지시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계열사 롯데알미늄(당시 롯데기공)에 중간마진을 챙겨줬다가 적발돼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6억4,900만원을 부과 받았다. 하지만 현행 법에 구체적인 제재 규정이 없어 만일 롯데가 소송을 제기하면 공정위가 불리할 것으로 예측됐다.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통행세는 역량 있는 중소기업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물론 건전한 경쟁환경을 파괴하는 심각한 불공정 행위"라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공정위는 통행세를 챙겨준 계열사에 대한 제재는 물론, 부당지원을 받은 계열사도 함께 처벌해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며 "대기업들의 통행세 관행만 해소돼도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불만이 상당 부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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