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기세로 휘몰아치던 ‘엔저(円低) 바람’이 이번 주말 중대 기로를 맞는다. 15, 16일(현지시간) 열리는 올해 첫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 최대 의제가 환율 전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시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엔저 정책이 조만간 한계에 부딪칠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1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G20 의장국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의 공식 의제는 ▦거시정책 공조 ▦국제금융 개혁 ▦에너지ㆍ기후변화 등 다양하다. 하지만 각국이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한 일본 정부의 엔화가치 하락 정책에 대해 세계 각국 정부가 첨예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환율을 다루는 ‘세계경제와 거시정책 공조’분야 논의가 가장 치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박재완 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참석한다. 박 장관은 지난달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국채이자 상승 등 여러 경로로 중장기적 비용을 유발할 것”이라며 G20 회의에서 대책을 촉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어느 정도 수위로 문제제기를 할 지 주목된다. 김 총재 역시 14일 “선진국 양적완화는 우리 같은 나라에 부담이 큰 만큼 국제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자국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그간 국제회의에서 계속 피력해 왔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현재 회원국들의 입장이 제각각이어서 구속력 있는 합의가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적완화를 실시 중인 미국은 최근 “일본의 정책적 노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고, 사실상 고정환율제인 중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유로화 강세로 고전 중인 유럽마저도 프랑스의 적극적인 비판과 독일의 소극적 관망으로 태도가 미묘하게 갈린다.
현재로선 유럽과 신흥국이 공동전선을 이뤄 엔저 정책을 공격할 것으로 보이지만 20개국의 공동행동 강령을 도출하기엔 역부족이다. 다만 “G20이 그 동안 환율 문제에서만큼은 비교적 강한 제한의지를 보였다”(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 “대부분 양적완화를 실시중인 G7 국가들의 국제회의와 G20의 분위기는 다를 것”(김승현 대신증권 연구원) 등의 관측도 있다.
한편에선 G20 등에서의 국제적 압박과 별개로 엔저 현상이 더 이상 속도를 내기 힘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JP모건의 분석 결과, 엔화의 지난달 실질실효환율(73.6)은 2008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불과 1년여 만에 17%나 절하된 속도로 볼 때 추가 하락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달러당 93엔대인 엔ㆍ달러 환율이 100엔에 가까워질수록 자국 산업 타격을 우려한 미국과 유럽의 저지 노력도 거세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무제한 양적 완화를 표방한 아베노믹스의 ‘지구력’을 의심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유동성 대량 확대가 이미 세계 최악의 상황인 일본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켜 국채값 하락을 부르고 결국 국가부채만 더욱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실물경제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 없이 유동성 공급 만으로는 경기부양은 반짝 효과에 그칠 뿐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이라고 말했다. 심재엽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엔저 정책이 현재 일본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수입물가가 올라가면서 물가 상승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또 다른 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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