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예술가… 괴롭히지 마라" 그의 일갈에 제작자 압박 줄어 촬영 중반 되니 현장 장악 가능'빠름 vs 느림' '화려 vs 초라' 대비 순수한 영화적 쾌감에 초점개봉 전 총기사고로 흥행 저조 흥행·평가 상관없이 새 전기
"할리우드에서 맨땅에 헤딩 하듯이 몸으로 다 겪었다. 초기 개발에서부터 스크린에 걸리는 데까지 전 과정을 경험했다. '라스트 스탠드'는 평가나 흥행에 상관없이 제게 큰 전기를 마련해준 영화다."
할리우드에 진출해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주인공을 한 액션극 '라스트 스탠드'를 만든 김지운 감독을 1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라스트 스탠드'는 헬기보다 빠른 튜닝 슈퍼카를 타고 돌진하는 마약왕과 FBI도 막지 못한 그를 막아내야 하는 작은 국경마을 보안관 사이에 벌어지는 혈투를 그린 영화다. 김 감독은 순수 영화적인 쾌감을 주려고 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차와 세상에서 제일 느린 마을의 분위기를 계속 교차해 보여준다. "빠름과 느림,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함과 시골의 초라함, 이런 이질적인 것들을 부딪치면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것 같았다. 색감과 스피드로 그 부조화를 잘 포장해내려 했다."
할리우드는 그에게 10년전부터 러브콜을 보냈다. " '장화 홍련' 이후 할리우드에서 계속 제의가 들어왔다. 한데 '장화 홍련'뒤에는 호러가, '달콤한 인생' 하고 나니 느와르가 들어왔다. 한 작품을 끝내면 다른 걸 하고 싶은 데 자꾸 같은 것만 들어왔다. 또 이미 시나리오와 주연 배우까지 갖춰진 패키지 형태가 많았다. 기능적 연출만 담당하는 고용감독 같은 것이어서 거절해왔다. "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는 영화를 찾다가 만난 게 이번 작품이다. "옥수수 밭에서의 카체이싱, 할머니의 반격, 조명탄 폭발, 계단에서의 혈투 등은 억지로 우겨 집어넣은 장면이다. 처음엔 제작사측에서 엄청 반대했다. 이러다 나중에 필요한 신을 못 찍을 수 있다고 협박하더라. 하지만 정작 시사회를 갖고 난 뒤 그 장면들이 가장 재미있다고 평가 받았다. 그렇게 반대했던 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가 그러더라. '고집 피워 줘 고맙다'고."
그는 아놀드에 대해 "항상 변함없이 밝은 사람이고 자신을 크게 도와준 은인"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그곳 시스템에 적응 못해 고민할 때였다. 촬영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놀드가 '감독은 아티스트다. 고민할 시간을 줘야 하니 괴롭히지 마라'고 했다. 그 뒤로 조감독이나 프로듀서의 압박이 줄었다. 그 한마디가 주술적인 힘을 줬다. 더는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정을 찾게 되면서 그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장의 중심은 아놀드였다. 어느 날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자 제작자가 오더니 아놀드가 당신 말만 들으니 대신 이야기 좀 전해달라 하더라. 그 순간 현장의 중심이 내게 왔단 느낌이 들었다. 아놀드가 내게 보낸 전폭적인 신뢰와 애정 덕분이다."
현재 할리우드와 스릴러 물 위주로 3편 정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단다. 일단은 한국에서 단편 2편을 찍은 뒤 장편 하나를 더 만들 계획이다. "현장에서 한국말로 디렉션을 하고 싶어서요.(웃음)"
'라스트 스탠드'의 미국에서의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다. 개봉 직전 총기사고가 잇따랐다. 총격 관련 액션 영화에 대한 비판이 많았고 총기 사용이 많았던 영화들이 다 망했다"는 게 그의 해명이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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