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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구경거리로 세상 떠돌다 죽은"유인원 여인"153년만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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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구경거리로 세상 떠돌다 죽은"유인원 여인"153년만의 귀향

입력
2013.02.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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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외모 때문에 ‘여성 유인원’ ‘암곰’ ‘늑대 인간’ 등의 오명을 쓰고 전세계 구경꾼들의 눈요기 감으로 전락했던 훌리아 파스트라나의 장례식이 그의 고향인 멕시코 북부 시날로아주 과사베 마을 묘지에서 12일 거행됐다. 그가 사망한 지 153년만이다.

멕시코 원주민 출신인 파스트라나는 1834년 태어났다. 희귀 유전질환인 다모증과 잇몸증식증으로 얼굴과 몸이 털로 덥수룩하게 덮였고 이와 턱은 지나치게 발달했다. 멕시코의 한 세관 공무원이 파스트라나의 외모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고 1854년 미국으로 데려가면서 기구한 운명이 시작됐다.

미국으로 건너간 파스트라나는 곧바로 서커스 무대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파스트라나를 ‘인류와 오랑우탄의 연결고리’로 표현한 광고를 실었고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파스트라나는 미국은 물론 유럽, 러시아 등에서도 무대에 섰다. 1859년 서커스 단장 테오도르 렌트와 결혼해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숨졌고 파스트라나 자신도 출산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기구한 삶은 사후에도 이어졌다. 렌트는 파스트라나를 묻어주는 대신 아이와 함께 시신을 방부 처리해 프리크쇼(기형인 사람이나 동물을 보여주는 쇼)를 했다. 파스트라나의 시신은 렌트가 죽은 후 노르웨이 박람회장에 전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1976년 박람회장 창고에서 도난당한 그의 시신을 노르웨이 경찰이 쓰레기통에서 발견, 오슬로대 법의학연구소로 가져가면서 파스타라나는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그 뒤 줄곧 오슬로에 있던 그의 유해는 멕시코 출신 예술가 로라 안데르슨 바르바타 등의 노력으로 귀환 길에 오르게 됐다. 바르바타는 “그는 품위를 되찾아야 한다”며 2005년 파스트라나 유해 송환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 유럽 등이 중남미와 아프리카 원주민을 바라본 시각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해 송환 캠페인에 동참했던 마르타 바르세나 코키 덴마크 주재 멕시코 대사는 “인간이 아니라 전시와 놀이의 도구로서 대륙을 옮겨 다녔을 파스트라나는 역사적인 희생양”이라며 “참혹하게 망가진 인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는 지금도 다모증 등을 앓는 사람들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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