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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를 예술로 끌어올린 '검은 피카소'와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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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를 예술로 끌어올린 '검은 피카소'와 재회

입력
2013.02.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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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캐스팅, 앤디 워홀과의 협업, 마약 중독, 요절….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미국 미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천재적인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회고전이 14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2006년 바스키아 회고전을 열었던 국제갤러리는 이번 '장 미셸 바스키아 전'에서 그의 대표작 18점을 통해 미국 현대미술과 1980년대 미국 사회를 되돌아 보게 한다.

바스키아의 짧은 생은 천재예술가의 삶 그 자체다. 이민자 가정의 혼혈아로 태어나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뿜어 나오는 예술적 재능을 감출 수 없었고, 채 서른이 되기 전에 마약 중독으로 요절했다. 고작 8년 동안 그려서 남긴 작품들로 그는 지금도 미국미술시장의 최상위 작가군에 속하는 유일한 흑인화가로 평가 받는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어렸을 적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눈물 글썽이는 어머니를 본 뒤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영재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시티애즈스쿨에서 친구들과 그래피티 그룹 'SAMO'(Same Old Shift의 약자)를 결성해 스프레이와 오일 크레용으로 뉴욕 이곳 저곳을 낙서로 도배하거나 뉴욕현대미술관(MOMA) 앞에서 자신의 그림을 그려 넣은 티셔츠, 엽서를 팔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바스키아의 작품 활동 중에서 특히 기억할 만한 것은 그가 그래피티를 당당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콜라주기법으로 작품의 바탕을 만들고 얼기설기 엮은 캔버스에 스프레이나 안료를 사용해 미국 하류문화를 재현한 독창적인 그림의 가치를 현대미술계의 큰 손인 브루노 비숍벨, 미술평론가 르네 등이 얼른 알아봤고, 미술시장은 신인 대접 받아야 할 그를 바로 중견작가로 대우했다.

7살에 교통사고로 비장을 들어낸 그가 어머니에게서 선물 받은 책 에서 영감을 받아 전통적인 화법에 구속 받지 않고 신체 여러 부위를 그려낸 그림도 눈여겨볼 만하다. 재즈뮤지션 찰리 파커, 야구선수 행크 아론 등 흑인 영웅들에 왕관을 씌운 그림은 인종차별이라는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천진난만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화폭에 담았던 바스키아는 1980년대 중반 주류 미술사회로 편입된 후 이렇게 능청스러운 방식으로 미국의 사회 갈등들을 화폭에 담아나갔다.

국제갤러리 K2관에서는 1980년대 초반 그래피티 기법을 캔버스에 옮긴 작품들을, K3관은 80년대 후반 명성을 얻은 후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피카소 후기에 보이는 거친 붓질, 앤디 워홀이 자랑하는 화려한 색감 등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바로 1980년대 미국미술의 대표적 흐름인 신구상회화의 요소들이다. 신표현주의 대표 화가이자 낙서화(Graffiiti)의 대가인 그의 작품에는 당시 미국미술의 다양한 특징이 담겨 있다. (02)735-8449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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