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 치료가 어려운 말기 암 같은 중증질환 환자들에게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가장 큰 이유는 비싼 진료비 때문이다. 현재 암 환자들이 양방 치료를 받을 땐 진료비의 5%를 본인이 내고, 나머지는 건강보험에서 부담한다. 그러나 한방 치료비는 거의 대부분을 환자가 내야 한다. 가뜩이나 오랫동안 병원을 드나들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암 환자들이 선뜻 한방 치료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한의사들 사이에서 양방 치료가 어려운 일부 중증질환이나 난치병에 대해서만이라도 한방 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진료비가 낮아지면 그만큼 환자가 늘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는 예상이다. 현재 한방치료가 전체 건강보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가 채 안 된다.
국내 보건의료정책에서 한의학이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각종 정책결정 과정에 양의사는 많이 참여하지만, 한의약 관련 조직을 제외하면 한의사가 관여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귀띔했다. 한 한의사는 "환자는 비용 부담 때문에 한방을 멀리하고, 제도권에선 한의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실에선 아무리 틈새시장을 개척해도 한방 발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의 분위기나 제도적 한계만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의계 내부에서 나온다. 전통이나 민족 정서에 기대기보다 한의학의 과학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른바 비방(秘方)만 고집하지 말고 학술지에 치료법과 임상결과를 밝히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한의학 논문을 보지 않는 양의사들도 논문 건수가 늘고 학술지 수준이 향상되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치료 결과만 강조하기보다 치료 과정까지 상세히 밝히며 환자와 양의를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방의 효과를 내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쓴 소리도 적지 않다. 한 한의사는 "특정 치료법을 부풀려 엉뚱한 환자에까지 이용하거나 치료 가능성을 보인 약재를 병을 완치하는 특효약으로 탈바꿈시키는 일부 한의사 때문에 한의학 전체가 비과학적이라고 오해를 받는 경향이 있다"며 한의계가 먼저 자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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