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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손을 쓸 수가…" 말기암환자에 한방이 손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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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손을 쓸 수가…" 말기암환자에 한방이 손내밀다

입력
2013.02.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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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봄 50대 여성 김수희(가명)씨는 갑작스런 담도암 진단을 받았다. 부랴부랴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까지 했지만 1년 6개월 만에 재발했다. 현대의학 기술을 총동원했는데도 암의 진행을 막지 못한 것이다. 김씨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2007년 봄부터 한방치료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웬일인지 4년 넘게 암 진행 속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김씨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양방병원에선 "처음부터 암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2011년 가을 폐렴에 걸려 항생제 치료를 받던 중 김씨의 암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봄 급기야 위와 장으로까지 전이됐고, 출혈이 심해진 김씨는 수혈에 의존해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야 했다. 출혈 위험 때문에 수술은 언감생심 시도도 어려웠다. 치료가 너무나 힘에 부쳤던 김씨는 다시 한방병원을 찾았다. 이후 다행히 지혈이 됐고, 지금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스스로 하면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담도암은 손도 써보기 전에 급격하게 진행되는 난치병으로 꼽힌다. 게다가 다른 장기로 전이마저 된 담도암을 6년째 끌고 간다는 건 쉽지 않다. 담도암뿐 아니라 치료가 어려운 췌장암, 폐암, 각종 말기 암 환자들에게 치료법이 양방이냐 한방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몇 개월이라도 더 살 수 있게 해주는 건 분명 의미가 있다.

치료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질

양방에서 항암제를 쓰는 주요 목적은 암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에 비해 한방 암 치료의 주된 목표는 생존기간 연장이다. 양방 암 치료가 암과의 전면전이라면 한방 치료는 우회전술인 셈이다. 김씨의 한방 주치의인 이수경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장은 "암이 조금씩은 커지더라도 환자가 어느 정도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가능한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 센터의 치료 목적"이라고 말했다. "현대의학에서도 새로운 항암제를 허가해주는 과정에서 기존 약보다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렸다면 의미 있는 효과로 친다"고 이 센터장은 덧붙였다. 암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 센터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김씨처럼 가능한 양방 치료는 거의 다 해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암제의 독성을 견디다 못해, 여생을 병원에만 누워 있고 싶지 않아서, 치료 중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려고, 양방에서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한방을 찾는 것이다. 심리적으로도 많이 쇠약해진 말기 암 환자들에게 주치의 얼굴 한번 제대로 보기 힘든 양방의 치료 방식은 기계적이고 차갑게 느껴질지 모른다. 이에 비해 의료진이 손수 침을 놓고 뜸을 뜨는 한방의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은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여러 장기로 암이 전이된 4기 암 환자들은 수술이나 방사선치료에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아 양방 병원에서 대개 항암제 위주로 치료한다. 그런데 항암제를 여러 종류 써봐도 암이 계속 진행되거나 부작용이 너무 심하게 나타나면 환자의 고통은 가중된다. 이런 환자들은 한방으로 적잖이 눈을 돌린다. 또 아직 전이되지 않았어도 이미 많이 진행된 암은 수술이 쉽지 않다. 3기B 이후의 폐암이 그런 경우다. 생명과 직결된 심장과 대동맥이 가까이 있어 위치에 따라 수술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3기B 이후 폐암 환자가 항암치료만 했을 땐 7, 8개월 살았지만, 한방치료를 병행했더니 20개월 가까이 생존했다는 보고가 나와 있다.

소아의 2차성 백혈병도 대표적인 난치암이다. 어릴 때 암으로 치료 받다가 백혈병이 추가로 생기는 경우다. 이 센터장은 "생후 10개월 때 뇌종양을 앓고 3살 때 백혈병이 생겨 우리 센터에서 한방치료를 시작한 아이가 골수이식 받지 않고 지금까지 15년 넘게 생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방으로 어려운 암도 있어

말기 암처럼 중증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이 같은 사례들은 분명 희망이다.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보고 지나칠지, 의학적 성과로 판단하고 연구할지에 대해서는 양방 내에서도 여전히 시각이 엇갈린다. 사실 아직도 말기 암에 대한 한방의 효과는 우연이거나 자연히 나아진 거라고 보는 양의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최근 양방 한쪽에서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는 움직임도 보인다. 지난해엔 백혈병을 앓다 대체의학 치료를 받은 환자들 가운데 회복된 사례를 양의들이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은 "논문에선 이들을 (서양의학으로는)이해할 수 없는 케이스라고 표현했는데, (대체의학의)효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또 센터의 한방 치료를 직접 지켜봤다는 한 양의사는 "환자들 컨디션이 일반적인 말기 암 환자들에 비해 눈에 띄게 좋다"며 "한방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진짜 한방의 효과인지 암 자체가 원래 그런 특성이 있는 건지 체계적으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방이 중증이나 말기 암 환자를 다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양방에서 쉽지 않은 치료는 한방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예를 들어 본래 몸이 전체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보는 한방으로선 환자가 오장육부의 기능이 거의 망가진 상태라면 치료에 큰 의미를 둘 수 없다. 암 환자 가운데 음식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크게 떨어졌거나, 통증이 극단적으로 심한 경우도 손을 쓰지 못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약이 먹는 형태이고, 양방에 비해 한방 치료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한방치료를 원하고, 한방치료가 가능한 환자들이 분명 있다. 그 '틈새'가 바로 한방의 주요 활로라고 많은 한의사들은 내다보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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