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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 잃은 그날 악몽 생생… 입양 딸 키우며 새 희망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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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 잃은 그날 악몽 생생… 입양 딸 키우며 새 희망 써요"

입력
2013.02.1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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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보려 발버둥을 쳐봐도 쉽지 않네요. 그저 딸 자식 하나 더 키우는 힘으로 버팁니다."

10년 전 대구지하철참사로 대학생 남매를 가슴에 묻은 김창윤(60)ㆍ 정경숙(59)씨 부부가 모진 세월동안 입양 딸 연우(가명ㆍ14)를 키우면서 희망을 새로 쓰고 있다. 경북 포항에 사는 김씨 부부는 딸 향진(당시 22ㆍ계명대 공예디자인)이의 졸업식날인 2003년 2월18일 누나와 함께 먼저 식장으로 떠난 아들 철환(20ㆍ중앙대 건축학1) 남매를 모두 잃고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던 김씨 부부가 고통의 긴 터널에서 잠시 벗어나 정신을 차릴 즈음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입양에 눈을 뜨게 됐다.

"입양아를 찾기 위해 대구와 경북 김천, 충북 음성 등 전국을 누비다 결국 울산의 한 고아원에서 연우와 만나게 됐다"는 김씨 부부는 사고가 난 해 11월 정식으로 입양서류에 서명했다. 늦둥이를 키우느라 세월가는 줄 모르던 김씨 부부는 2년 후인 2005년 "먹고 살 만한데 한 명 더 키우자"며 연우보다 두살 많은 여자아이를 또 입양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넌 누구야. 언제 집에 가"라며 노골적으로 골을 부리는 연우의 성화를 견딜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주일 만에 김천의 고아원으로 돌려보낸 김씨 부부는 "아마 그때 연우가 시샘만 하지 않았다면 몇 명 더 입양했을 지도 모른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연우는 자신의 입양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 언니 오빠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빠 엄마로부터 들었다. 이들 세 가족은 매년 참사 기일인 2월18일과 설, 추석 명절이면 남매가 있는 대구시립납골당을 찾는다. 며칠 후면 아들 딸을 만날 김씨 부부는 벌써 마음이 설렌다.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날의 기억은 오히려 생생하다. "'먼저 졸업식장에 갈 테니 아빠 엄마는 천천히 오라'며 먼저 포항 집을 나선 남매가 사고를 당한 사실도 모르고 졸업식장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일이 엊그제 같다"는 김씨 부부는 "가족을 생이별시키는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되면 안된다"고 흐느꼈다.

정씨가 50대를 줄곧 연우 키우는데 쏟을 동안 김씨는 또 다른 희망의 불씨를 키워왔다. 연우를 입양한 이듬해인 2004년 봄 회사 동료들과 함께 현대제철 포항공장 자원봉사단을 만들었다. 매달 고아원과 장애인 및 노인복지시설 등 불우이웃을 찾는 이 봉사단은 초창기 15명에서 지금은 230명으로 식구가 늘어났다. 14일 점심때도 김씨는 포항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동료 7명과 함께 짜장밥을 배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7년째 자원봉사단장을 맡으면서 소녀가장 두 명을 따로 돕고 있는 그는 2009년에는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서 감사패를, 2011년 말에는 삼일문화재단의 사회봉사 대상을 받는 등 봉사를 제2의 천직으로 삼고 있다.

김씨는 참사 기일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의 추모행사에는 가지 않는다. 희생자대책위와 비상대책위가 둘로 나뉘어 추모행사도 따로 여는 어색한 모습을 보기 싫어서다. 김씨는 "재단운영을 둘러싸고 서로 싸우는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다"며 "이를 방치하고 있는 대구시가 더 나쁘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에게는 연우가 전부다. 부모의 사랑을 곱절로 받고 자란 연우는 참사기일 다음날인 19일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대학 졸업식때 자식을 떠나보낸 김씨 부부는 연우의 졸업식이 예사롭지 않다. "잘 키우는 일만 남았죠. 아들 딸 몫까지…."

대구에서는 2003년 2월18일 중앙로역 전동차 화재사고로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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