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의 핵안보 위협이 높아지자 그 동안 비핵화를 전제로 접근했던 북핵 문제 해법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20년간 진행돼 온 현재의 접근 방법 자체가 북한의 핵 개발 시간만 벌어줬을 뿐 사실상 비핵화에 실패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표면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거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비핵화를 전제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구본학 한림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향후 북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비핵화를 전제로 하면 아무 진전을 볼 수 없다"며 "목표 자체는 비핵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접근 방법 자체는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거나 핵 보유국으로 승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에 배치할 경우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핵 능력 증강 속도를 동결시키거나 늦추는 것이 우선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측면에서 공조가 필요한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에 주목해 북핵 문제의 기본 전제를 비핵화가 아닌 비확산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미 북한을 비핵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됐으며 미국의 정책도 비확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비핵화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과 비확산으로 이동하는 미국간 북핵 문제에 대한 인식 차가 생길 수 있으니 일정 부분 조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비확산 문제를 강조하다 보면 북한의 핵 보유 인정은 물론 추가적인 핵개발을 방치하게 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의 핵 보유 자체를 인정하는 순간 북핵 문제의 판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며 "이는 굉장히 많은 변수가 뒤따르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쪽으로 국제적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비확산 정책을 채택할 경우 대화의 중심이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핵을 가진 국가인 북미간 대화로 이동하게 돼 결국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우리 정부가 소외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북핵 억지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핵이 실질적 위협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떤 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포괄적 억지력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초정밀 타격 능력을 갖춘 무기를 보유하고 한국형 방어체계 구축을 추진하는 한편 북한의 핵공격 징후가 보일 경우 선제 공격하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독자적 핵무장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한반도 주변의 핵 도미노 현상을 초래할 수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또 6자 회담을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대화와 협상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0ㆍ4 선언 등에 근거가 있는 남북과 미국 혹은 중국까지 포함하는 3자나 4자 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까지 논의할 수 있는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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