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으로 비유럽·흑인 교황의 등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1일 유력한 교황 후보 4명을 꼽았는데 그 중 2명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인 가나의 피터 턱슨(64) 추기경과 전 경진성사성성 장관인 나이지리아의 프랜시스 아린제(80) 추기경이 그들이다. 이들이 교황 자리에 오른다면 496년 겔라시우스 교황 선종 이후 1,504년 만에 아프리카 출신 교황이 된다.
턱슨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가 2010년 8월 런던을 방문할 때 동행해 차기 교황 후보로 떠올랐다. 턱슨 추기경은 모국어 판테어와 영어 외에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를 구사하며 히브리어, 아랍어, 아라비아어, 그리스어를 익혀 20대 중반부터 성서 연구에 매진하는 등 박학다식한 면모가 강점이다. 2003년 55세라는 젊은 나이에 추기경으로 임명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검소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직자"로 아프리카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턱슨 추기경은 "흑인이 교황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못 될 이유가 있냐"며 교황을 향한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린제 추기경은 2005년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선출될 때 고배를 마신 인물이다. 그는 당시 비유럽권 교황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결과 근소한 차이로 물러났다. 아린제 추기경의 강점은 오랫동안 교황 후보로 거론돼 왔고 교황청 외부와도 원활히 소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80세로 고령이라는 점이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몇몇 전문가들은 "가톨릭 신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남미 지역에서 교황이 탄생할 것"으로 예측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남미 지역에는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 중 약 42%가 살고 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수장인 게르하르트 뮐러 대주교는 "세계의 가톨릭 교회를 책임질 수 있는 남미 지역의 추기경들을 많이 알고 있다"며 "이번은 남미 차례"라고 말했다. 남미 지역의 교황 후보가 될 수 있는 80세 이하 추기경은 19명으로 5명이 브라질 출신이다. 이중 오디요 페드로 셰러(61) 상파울루 대주교가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교황청 동방교회성 장관인 아르헨티나의 레오나르도 산드리(70) 추기경도 물망에 올라 있다.
교황청 주교성 장관인 캐나다의 마크 웰레(69) 추기경도 비유럽 출신이며 베네딕토 16세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언젠가 교황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권력 의지가 없다는 점이 약점이다.
유럽에서는 교황 지위를 되찾고 싶어하는 이탈리아 출신들이 손꼽힌다. 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인 지안프랑코 라바시(71) 대주교와 안젤로 스콜라(71) 밀라노 대주교다. 라바시 대주교는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일반 신자들과 교감에 힘써 왔으며 스콜라 대주교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가톨릭이 현대 사회에 더 호소할 수 있도록 소통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차기 교황 선출 구도가 비유럽 지역의 경쟁 양상을 띠는 것은 "가톨릭이 더 이상 유럽의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반영한다"고 NBC방송이 지적했다. 최근 유럽의 신자가 줄어든 반면 아프리카 등 비유럽 신자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의 윌프리드 나피어 추기경은 AP통신에 "가톨릭이 성장세에 있는 북반구 이외 지역에서 교황을 선출한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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