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진예술계의 독보적 다큐멘터리스트인 원로 사진작가 최민식씨가 12일 오전 8시 40분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고인은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 한국 사진예술에 다큐멘터리 사진의 초석을 세운 1세대 작가이자 지독한 리얼리스트였다. 소작농인 아버지 밑에서 혹독한 가난을 겪으며 자란 탓에 그의 뷰파인더는 언제나 가난하고 고통스럽지만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억척스런 서민들의 모습으로만 향했다.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미츠비시 기능자양성소 기능교육을 수료하고 자동차기능공으로 일하던 고인은 서울로 옮겨와 낮에는 과자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미술학원에 다니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6ㆍ25전쟁 후 일본으로 밀항, 도쿄중앙미술학원에서 2년간 미술을 공부했으나, 그곳에서 미국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가족'을 우연히 본 후 사진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때부터 혼자 사진을 공부하며 인물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는 곱고 예쁜 풍경 대신 힘없고 궁핍한 사람들의 남루하고 고단한 삶을 찍어왔다.
큰 딸 등에 업힌 아들녀석에게 선 채로 젖을 먹이는 부산 자갈치시장 아낙네의 모습('부산 1969'), 국수 먹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와 할머니의 따스한 시선('부산 1960')을 담은 1950~70년대 사진들이 대표적 작품이다.
"사진은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진실이다. 정직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고인은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으로 꾸미고 만지는 사진에 반대하는 골수 스트레이트 사진작가였다. 85세의 나이에도 작은 글씨까지 읽을 수 있는 시력을 풍경이 아닌 인물과 그들의 표정을 읽으라는 신의 선물로 여겼다. "연극, 문학은 관념으로 되지만 사진은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자신의 예술관대로, 과로로 병석에 눕기 직전인 지난해 늦가을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고 부산과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일대를 누볐다.
74년 한국사진문화상 수상 후 87년 예술문화대상, 2000년 옥관문화훈장, 2008년 국민포장을 받았으며, 미국 등 20여개국의 유명 사진공모전에서 220점이 입상하기도 했다. 2008년 사진작품 원판 10만여 장 등 13만여 점의 사진자료를 국가기록원에 기증, 민간기증 국가기록물 제1호로 지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정남씨와 3남 1녀가 있으며, 빈소는 부산 용호동 성모병원, 발인 15일 오전5시 30분. (051)933-7485.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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