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1585년 퇴계 이황(李滉)이 55~60세에 쓴 편지 가운데 수양과 성찰에 도움이 되는 22개를 모아 직접 편집한 책이다.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아니한 것은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로 시작해 "이 글들에는 원고가 없어져 수록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하기야 잃어버리지 않고 모든 편지를 다 기록하여 큰 책을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로 끝나는 여섯 문장의 짧은 머리글에서부터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 겸손하고 소박하면서도 고결한 그의 삶을 더욱 명징하게 확인시켜주는 책이 권두경이 6권3책으로 편찬∙간행한 이다. 김성일 권호문 김부륜 정구 등 제자들이 구체적 증언(사례)으로 스승인 퇴계의 학문, 덕성, 자질, 몸가짐, 철학, 예(禮), 생활, 인생을 말한다. '벼슬살이와 향리생활을 말함'(3권)에서는 단출하기 그지없는 퇴계의 밥상이 나온다. 김성일의 증언에 의하면 끼니마다 세 가지 반찬을 넘지 않았고, 여름에는 건포 한가지뿐이었다.
■ 퇴계는 "나는 참으로 박복한 사람이다. 기름진 것을 먹으면 체한 듯하여 속이 편치 않은데, 쓰거나 거친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하다"고 했다. 잡곡밥에 가지와 무나물, 미역뿐인 '1일 2식, 3색 반찬'의 밥상. 퇴계 스스로 말한 체질 탓이거나, 아니면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해 위장이 좋지 않은 탓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이 에서 소개한, 퇴계가 한양 서성(西城)에 우거할 때 좌의정 권철과의 식사 일화가 말해주고 있다.
■ 그날도 평소대로 밥상을 차렸다. 권철은 맛이 없어 젓가락도 대지 못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퇴계는 "제가 대감께 올린 밥상은 백성들에 비긴다면 성찬"이라며 여민동락을 잊은 정치인, 백성의 생활과 동떨어진 관리를 걱정했다. 퇴계의 체질과 정신을 조금은 이어받은 때문인지 후손들 역시 명절이라도 피를 맑게 해주고 속 편한 채갱(菜羹∙나물반찬과 나물국)을 많이 먹는다. 나 역시도. 물론 설 연휴 육류과식으로 늘어난 체중을 걱정하는 일도 없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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