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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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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입력
2013.02.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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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박근혜는 실패한 적이 없다. 18년간의 칩거를 끝내고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한 2004년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로 배수진을 친 끝에 4ㆍ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따냈다. 당 대표로 있던 2년여 간 여당을 상대로 각종 재ㆍ보선에서 거둔 51승 0패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유일한 시련은 2007년 대권 도전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40% 안팎의 지지율을 얻으면서 '대세론'을 형성해 줄곧 실세 역할을 해왔다.

정치인 박근혜는 누구에게 신세 진 것도 빚진 것도 없다. 혈혈단신으로 쓰러져 가는 당을 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성공을 일궈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친박 인사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줬지 받았다고 할 수도 없다. 당연히 직접 챙겨주거나 천거에 응해줘야 할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 홀로 인사' 스타일과 독선적 리더십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드러날 계기가 없어 잠복해 있었을 뿐이다.

김용준 총리후보 낙마에 대해 개인 신상털기 식의 청문회 제도가 문제라는 발언에서는 인선을 잘못한 게 아니라는 동떨어진 현실 인식이 묻어난다. 늘 자신이 해오던 판단이 맞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방식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다. 이를 보면 보안을 중시하고 밀실에서 인사를 틀어쥐고 하는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늘 성공한 정치인으로 살아왔던 박근혜 당선인이 닮고 싶은 모델은 오로지 아버지 박정희 뿐이다. 어머니를 잃은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옆에서 지켜본 박정희는 국민에게 추앙 받는 뛰어난 지도자로 비쳤을 게다. 박 당선인의 모습에서 박정희의 그림자가 자꾸 어른거리는 것은 그런 연유다.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그 자리에 육군을 총지휘하던 4성 장군 출신을 앉힌 게 대표적이다. 그런다고 경호실장이 박정희 정권 말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차지철처럼 될 리야 없겠지만 경호실 힘이 비대해지면 어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대선 때 박 당선인이 제기한 '잘살아 보세'란 구호가 제2의 새마을운동 추진 움직임으로 구체화된다든가, 경제부총리의 부활에서도 그런 점이 발견된다.

무엇보다 국무총리 인선에서 아버지의 영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당초의 책임총리 공약은 온데간데 없고 '보필총리''의전총리'로 쪼그라들었다. 명목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아버지의 스타일 그대로다. 법조인 총리를 고집하고 육사 출신을 중용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오죽하면 육사 출신과 법조인이 행정부에 많았던 현상을 꼬집은 '육법당'의 부활이란 말이 나올까.

그러나 박 당선인이 착각하는 게 있다. 아버지 집권 당시와 지금은 시대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사실이다. 나라 규모는 그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반대파는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던 시절도 아니다. 국회는 있으나마나 하고 언론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지던 때는 더더욱 아니다. 폐쇄, 비밀, 독선, 불통, 군림, 권위주의 같은 용어는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박 당선인은 이제 달성군 국회의원도 새누리당 대표도 아니다. 국민을 하나로 결집해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 가야 할 대통령이다. 박 당선인은 1991년 2월 21일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항상 깨어있는 지도자,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끊임없이 정진하는 지도자는 나라와 국민의 복이며 하늘의 축복이며 지도자가 국가와 국민에게 바치는 최대의 봉사인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병통은 오만이라고 하였는데, 사람 마음을 병들게 하고 비뚜로 나가게 하는 근원은 거의 항상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읽고 마음을 다잡기 바란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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