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 가톨릭 교회 정체성 정립 위해 노력이슬람·유대교 등 타종교와 대화 중시TV인터뷰·트위터 이용 등 대중화도 힘써암(暗), 선출 때 이미 78세… 현안 해결 소극적보수적 신앙관 고집, 가톨릭 내부 분열신부 성범죄 등 잇단 대형 악재에 곤욕도
28일 퇴위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유럽의 세속화 및 개신교의 확산에 맞서 가톨릭 교회의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애썼던 교황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24년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을 맡아 보수적 교리 해석을 주도하며 '신의 로트바일러(독일산 맹견)'로 불렸던 그는 교황에 오른 뒤에도 사제의 결혼, 동성애자 및 여성의 사제 서품, 개신교와 합동 미사에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낙태, 콘돔 사용, 페미니즘, 인간복제 등에도 수차례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교회 전통의 부흥을 위해 바오로 6세(1963~78년 재임) 이후 폐지된 교황 의상을 다시 착용했다. AFP통신은 "교황은 가톨릭 개혁을 표방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 이후 교회의 오랜 동요를 안정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고 평가했다.
카리스마가 넘쳤던 전임 바오로 2세와 비교되는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이었던 교황은 한편으로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TV인터뷰에 출연하고 트위터 계정을 개설하는 등 대중과의 소통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2006년 "이슬람교는 사악하고 비인간적"이라고 폄하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원칙적으로 이슬람교, 유대교 등 다른 종교와의 대화와 공존을 중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반적인 신자 감소 속에서 중국 및 아프리카에서 교세를 확장한 것도 치적으로 꼽힌다.
그러나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선출 당시부터 고령(78세)에 뇌졸중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교황은 "소신 강한 학자이자 유능한 행정가"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현안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교황 스스로도 "교황에 선출되기 이전 은퇴를 계획하고 있었다"며 교황직에 마음이 없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BBC방송은 교황의 친지들을 인용해 "교황이 로마에서 외로움을 느껴 (고향 독일에 있는) 친지들과의 대화를 몹시 원했고 이들을 정기적으로 자신을 찾아오도록 했다"고 전했다. 그가 강고한 보수적 신앙관을 고집하며 가톨릭 내부를 분열시키고 교황청 및 교회 개혁을 가로막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교황은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바티칸은행의 돈세탁 연루, 교황청 내부 문건 유출 등 재위 기간 중 잇따라 터진 대형 사건으로 권위에 상처를 입었다. 교황이 사제에 대한 재판권을 가진 신앙교리성 장관 재직 시절 한 신부의 성범죄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교황은 2008년 "부끄럽다"며 사과했지만 사건 원인을 개인의 신앙심 부족으로 돌리며 2년 뒤에야 대응기구를 설치했다. 교황의 집사가 저지른 비밀문건 유출을 두고도 "교황이 몇몇 측근에 의존하며 바티칸 내부의 세력 다툼을 도외시했기 때문"(AFP통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이 기로에 선 가톨릭교회를 이끌어가게 됐다"고 평가하며 사제들의 성범죄가 만연했던 것으로 드러난 가톨릭의 본산 유럽에서 도덕적 권위를 되찾는 것을 새 교황의 선결 과제로 꼽았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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