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승의 손에 살해된 주지승의 아내, 살인 교사 혐의로 기소됐으나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던 주지승. 하지만 10년이 지나 의문의 살인사건은 실마리가 드러났다. 주지승이 내연녀를 이용해 아내의 보험금을 타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중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태고종 소속 경기도 한 사찰의 주지승 박모(50)씨는 2003년 10월 행자승 김모씨를 시켜 아내를 살해한 혐의(살인교사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살해 지시를 받았다는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없고, 박씨가 아내를 살해할 동기가 부족하다"며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박씨의 살인교사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김씨의 진술이 구체적인데다 아내를 잃은 박씨가 수사과정에서 김씨에게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은 점 등에서 김씨와 박씨가 공범 관계일 것으로 판단, 이들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한 것이다. 3년을 끌었던 재판은 2005년 파기환송심이 박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끝났다. 대형 로펌 변호사를 고용한 박씨는 "아내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김씨가 피해자에게 무시를 당하자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살해 사실을 인정한 김씨만 징역 15년형이 확정됐고, 박씨는 해외 선교를 이유로 2006년 캄보디아로 떠나면서 사건은 잊혀졌다.
그런데 경찰이 지난해 박씨가 2005년 아내 명의 보험금 8억원을 탔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보험설계사 조사에서 박씨의 내연녀 김모(42)씨가 박씨의 아내인 것처럼 보험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경찰은 박씨의 여권을 말소하고 인터폴에 적색 수배했다. 이를 몰랐던 박씨는 지난해 귀국 과정에서 체포돼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의 원혼이 있어 기소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사람의 힘으로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며 박씨에 대해 보험사기 법정형 상한(10년 이하 징역)보다 높은 15년형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이성용 판사는 12일 박씨에게 징역 7년5월의 중형을 선고하고, 내연녀 김씨에게는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일사부재리 원칙상 박씨의 살인 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다시 판단할 수 없었지만 재판부는 판결문 말미에 "보험사들을 속인 것과 그 결과 발생(아내 살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문구를 남겨, 박씨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분명히 지적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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