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빛이 도는 금발머리가 사랑스러운 마야는 태어난 지 8개월 된 독일의 여자 아이다. 마야는 선천성 신증후군을 앓고 있어 단백질을 흡수하지 못하고 몸 밖으로 그대로 내보낸다. 신장을 기증받지 못하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까지 받았다. 마야는 몸무게가 7.5㎏에 불과한데 9㎏을 더 찌워야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다. 유전적 이유 때문에 마야의 형제 자매 3명 중 한 명은 마야와 같은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 또다시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마야의 부모에게 건강한 아이를 고를 권리를 줘도 되는 것일까.
독일 정부가 8일 선천성 질환이 없는 태아를 고를 수 있도록 착상 전 배아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승인했다고 주간 슈피겔이 전했다. 이 법안은 의회 통과를 거쳐 1년 후 시행된다. 어떤 유전 질환을 사전 검사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별도의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개별 사안마다 승인하는 체계로 운영될 예정이다.
배아 유전자 검사의 방식은 이렇다. 난자를 추출, 인공수정을 시킨 뒤 약 5일 동안 외부에서 배양한다. 분화한 세포 중 일부를 떼어내 유전자 검사를 한 다음 결함이 없는 배아를 착상시키는 것이다. 현재는 양수 검사 등을 통해 태아의 유전자 질환을 알아낼 수 있지만 배아 검사는 착상 전 단계이기 때문에 낙태의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독일에서는 지금도 배아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 기업이 있다. 의사들은 처벌 가능성 때문에 검사를 하지 않지만 뮌헨의 메디컬 제네틱스 센터는 2010년부터 82쌍의 커플에게 검사를 해줬다. 금지 여부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모호한 점을 이용해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영업을 하고 있다.
이미 영국, 벨기에, 체코 등에서는 합법화했지만 건강한 아이를 골라 낳도록 허용하는 국가가 늘어날수록 인간 생명의 선택권에 대한 근본 의문도 커지고 있다. 특히 영국은 2008년 백혈병 등에 걸린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아이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동생을 인공수정으로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치료용 맞춤 아기'까지 허용해 논란이 됐었다.
생명윤리 학자인 악셀 바우어씨는 한 칼럼에서 "배아 유전자 검사는 사회에서 감내할 수 있는 '정상인'의 범주를 크게 줄일 것이며 미래에는 인간이 오직 질적 관리 하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장 전문가들은 이를 지나친 비약이라고 반박한다. 메디컬 제네틱스 센터의 설립자인 엘케 홀린스키 페더(51) 박사는 "생식세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장애의 80%는 후천적인 것이며 선천적 장애의 상당수도 임신 중 음주와 같은 이유로 발생하고 순전히 유전적인 장애는 10% 이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0% 중에도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 많다. 페더 박사는 "독일에서 1년에 200~300쌍 정도만 배아 유전자 검사로 혜택을 받을 것이며 인간의 생명에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운명의 역할은 여전히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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