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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낯으로 고향에…" 슬픈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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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낯으로 고향에…" 슬픈 청춘

입력
2013.02.1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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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연휴가 짧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한층 커지는 명절은 고통스러운 날이니까요."

고향이 경남 김해시이지만 설 기간 서울에서 홀로 지낸 윤모(25ㆍ여ㆍA대학 졸업반)씨는 11일 신촌의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로 점심을 때웠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았다. 설 연휴 끼니 챙길 곳이 마땅치 않은 또래 젊은이 서너 명도 옆 자리에서 컵라면 비닐을 벗겼기 때문이다.

윤씨 어머니는 이달 초부터 고향에서 전화를 걸어 "하루라도 편히 쉬다 가라"고 당부했다. 마음이 움직인 윤씨는 며칠 간 인터넷 버스표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지만 결국 표를 사지 못하고 학교 앞 단칸 자취방에 남았다. "취업 못했다고 뭐라고 하는 친척은 없지만 괜히 주눅이 들어 안 내려 간 게 벌써 2년째예요. 엄마에게 6~7시간 차 타는 게 부담이라고 둘러대는 데 가슴이 저려요." 윤씨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졌다.

설이었던 10일 오전 공무원 시험준비의 메카인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학원가에서 문 연 식당을 찾던 장모(26)씨도 고향길을 포기하고 학원에 남은 취업준비생이다. 지난해 추석에는 고향인 충북 단양군에 다녀왔지만 올해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2년 넘게 합격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마당에 명절은 사치였다. 장씨는 "친척들 보기가 민망하다"며 "올해는 경찰 채용을 늘린다니까 어떻게든 기회를 잡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가족이 모이고 웃음꽃이 만발하는 민족의 명절 설에도 고향 집 문턱을 넘을 수 없는 청춘들.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취업난이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2년 10월 기준 청년실업자 수는 약 28만 명에 이른다. 특히 20대 취업률은 2011년의 58.6%에 비해 1.6%포인트 감소한 57.0%로 조사됐다. 수치상으로만 따지면 20대 10명 중 4명이 놀고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주요 대기업들이 채용문을 여는 3월을 앞두고 이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찰공무원 시험준비생들에게는 경찰 채용을 늘리겠다는 박근혜 정부 출범이 코 앞이라 더욱 신발끈을 조여야 할 때다.

이런 위기감을 증명하듯 노량진의 한 대형 경찰공무원 학원에서 연휴 동안 진행한 영어 특강은 이미 10일 전에 일찌감치 등록이 마감됐다. 공휴일에 휴관하는 시립도서관이나 재학생만 출입이 가능한 사립대 도서관과 달리 휴일에도 일반인 출입이 가능한 국립대 개방 열람실에도 수험생들이 대거 몰렸다. 서울대 일반인 개방 열람실에서는 선착순 200명에게 나눠주는 출입증이 연휴기간에도 점심시간 무렵이면 동이 났다. 학원가와 대학 근처 분식집과 패스트푸드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취업준비생들로 북적거렸다. 노량진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남모(25)씨는 "올해 교사임용시험이 이제 9개월 남았다"며 "명절이라고 쉬면 붙을 수 없다. 이 바닥은 일년 내내 전쟁"이라고 말했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족공동체와 어우러질 수 있는 명절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취업준비생이라고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신이 맞닥뜨린 취업문제가 워낙 크고 무겁게 느껴지기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명절에도 고향을 갈수 없는 각박해진 우리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안타까워했다.

글ㆍ사진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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