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올지 겁납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재개발지역 아파트(상도엠코타운센트럴파크) 학부모들이 최근 '과밀학급 해소 대책을 세워달라'고 서울시교육청에 집단 청원을 냈다. 작년 6월 '개교 예정인 상현초등학교를 혁신학교로 해달라'는 학부모들 청원에 의해 첫 혁신학교로 지정 받아 유명세를 탄 곳이다.
아파트 학부모들이 긴급 반상회까지 열어 반년 만에 2차 청원을 한 사정은 절박하다. 혁신학교에 대한 기대를 품은 미취학아동 부모들이 앞다퉈 이사오면서 상현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가 권고기준(25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 오모(36)씨는 "올해 2학년은 이미 6개 학급당 30명이 넘는데, 1학년은 7개 학급으로 시작해도 감당이 안 돼 엄마들이 다들 놀랐다"고 했다.
1,200세대가 입주한 이 아파트는 층층마다 유모차나 어린이자전거가 있을 정도로 어린이 천지다. 더구나 올해 8월엔 882세대가 인근 아파트로 입주하는 터라 더 많은 아이들이 밀려들 전망이다. 우리부동산 김모(45) 대표는 "초등학생 학부모들 수요가 워낙 많아서 전셋값(33평)이 6개월 새 1억원이나 올랐어도 물건이 없다"고 전했다.
해당 동사무소에선 위장전입을 우려해 선수관리비영수증을 제시하는 세대만 전입 신청을 받고, 학부모들은 저마다 학군 축소, 학교 증축, 위장전입 적발 강화 등을 내세우며 청와대 등에 민원을 넣고 있을 정도. 그런데도 전세가격은 비정상적으로 뛰고 있다.
강동구 상일동 일대 부동산엔 요즘 노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손주들을 인근의 잘 나가는 유치원이나 혁신초등학교(강명초등학교)에 보낼 요량으로 집을 알아보는 것이다. B부동산 김모씨는 "10년간 이 동네에서 일하면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문에 잠실, 방배 등에 사는 조부모들까지 몰린 건 처음"이라며 "1월에 생긴 유치원이 최근 호가를 1,000만원 정도 끌어올렸다"고 귀띔했다.
강명초등학교 역시 부동산가격을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강일2지구는 근처 1지구에 비해 전세는 평균 3,000만~4,000만원, 시세는 평균 5,000만원 가량 비싸다. 위장전입 사례도 많아 나중에 추려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성북구 장위2동의 혁신학교(월곡초등학교) 주변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혁신학교뿐 아니라 유치원도 괜찮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전세를 얻고 싶다는 전화가 꾸준히 걸려온다"고 했다.
부동산시장에 '키즈 파워'가 거세다. 그간 대치동, 목동 등 대입 전문학원이 밀집했거나 학군이 좋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뛰었지만, 최근엔 유명 유치원과 혁신초등학교 주변이 인기다. '교육 이사'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혁신초등학교는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젊은 맞벌이 부모들은 혁신학교를 학비가 부담스러운 사립초등학교, 왠지 망설여지는 공립초등학교의 대안으로 여긴다. 때문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주거지를 바꾸면서 아파트 매매 및 전셋값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7세 아들을 둔 김모(37)씨는 "사립을 보내려니 부담스럽고, 공립에 넣자니 양에 안 차 혁신초등학교를 알아보는 중인데, 현재 집을 전세 내주고 해당 지역으로 옮기려 해도 마땅한 집이 없거나 비싸서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존 교육1번지들이 힘을 잃는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봤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수능시험이 EBS교재 중심으로 출제되고, 새로운 교육방식에 대한 학부모들의 욕구가 점차 커지면서 혁신학교 주변 전셋값이 국지적으로 오르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며 "예전처럼 대입 교육 때문에 대치동, 목동 지역 전셋값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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