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전날 라디오방송 귀성특집에서 떡국 얘기가 나왔다. 남녀 진행자가 떡국 풍속을 소개하며 “주로 뽀얀 사골육수에 끓여먹는 담백한 떡국의 맛”이니 어쩌니 했다. ‘담백하다’는 형용사를 떡국에 갖다 붙인 거야 언어감각의 차이 탓이겠지만, ‘주로 사골육수’라는 얘긴 당최 사실과도 다른 엉뚱한 것이다. 진행자들은 백자처럼 하얀 떡국 속의 가래떡 빛깔 때문에 떡국물을 사골육수로 오인했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 에는 떡국을 ‘흰 가래떡을 썰어서 맑은 장국에 넣고 끓인 음식으로 정조차례(正朝茶禮) 시에 세찬(歲饌)으로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육수의 종류를 따로 정하진 않았지만, ‘맑은 장국’을 쓰는 게 기본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했다. 맑은 장국은 ‘육수를 맑게 우려내 간장으로 간을 한 국물’이기 때문에 대개 소금간을 하는 탁한 사골육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떡국에 쓰인 맑은 장국은 시대와 지역, 계층에 따라 다양했다.
■ 맑은 장국의 육수 재료로 조선왕조 이전부터 고급으로 쳤던 건 꿩고기였다. 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고려 후기에 원나라 풍의 매사냥이 귀족들의 사치스런 놀이로 자리잡으면서 매가 물어온 꿩으로 국물을 만든 떡국이나 만둣국, 꿩고기를 속으로 넣은 만두가 고급음식으로 대접 받았다. 조선 후기 정조 때 혜경궁 홍씨에게 올린 떡국의 레시피가 담긴 (1795년)에도 떡국 육수로 꿩고기와 늙은 닭을 함께 넣고 끓여낸 육수를 쓴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 하지만 궁중 떡국 육수 재료로 꿩과 닭만 쓰인 건 결코 아니다. 일례로 (1868)에 나오는 떡국 육수는 쇠고기 등심과 도가니를 썼다. 꿩을 널리 구하기 어려웠던 궁중 밖에선 전통적으로 쇠고기 육수가 떡국용 맑은 장국에 가장 널리 쓰인 게 분명하다. 물론 지방에 따라 멸치국물 떡국도 있고, 요즘 들어 사골떡국이 흔해진 것도 사실이다. 페이스트가 흔해지면서 시중의 인스턴트 떡국제품의 주종도 사골떡국이 됐다. 방송 진행자들조차 사골떡국을 대세로 알 정도니, 세태의 변화 추이가 새삼스럽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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