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말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졌다. 그해 10월26일 치렀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디도스 공격'이 빌미가 됐다. 홍준표 대표체제는 무너졌고 박근혜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당시 '안철수 바람'에 박근혜 대세론마저 흔들거렸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극약처방을 했다. 26세의 이준석을 비대위원에 임명하고 디도스 검찰수사 국민검증을 맡겼다.
이준석은 아주 당돌하다. 한 마디로 톡톡 튄다. 디도스 의혹을 제기한 김어준 나꼼수 총수에게 함께 조사하자고 제안했다. 의표를 찌른 것이다. 또 박희태 국회의장의 비서가 연루된 점을 들어 박 의장에게 거취표명을 요구했다. 한나라당 내부를 향해서도 입바른 얘기를 서슴지 않았다. "정당자체가 둔해 보이고, 뻔해 보이는 얘기를 질질 끌어서 짜증나게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도박은 성공했다. 멀어져 가던 국민들의 마음을 돌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박근혜의 남자'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의 '삼각편대'는 종횡무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이계 중심인 한나라당을 완전히 해체했다. 친이계는 악 소리 한번 질러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졌다. 박근혜의 새누리당 탄생이다. 그 선봉장이 바로 이준석이다.
이준석은 아주 삼빡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부산 사상에 출마한 대권주자 문재인의 대항마로 손수조를 공천했다. 이준석과는 85년생 동갑내기다. 손수조가 힘들어할 때 이준석은 공개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그해 5월 문재인의 목을 자르는 만화 삼국지 웹툰(문재인 참수)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이준석은 이유를 불문하고 바로 달려가 사과했다.
거기까지다. 지난 8월20일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통령후보로 결정된 후 이준석의 이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간혹 이준석 전(前) 비대위원의 이름이 나올 뿐이다. 안철수 전 원장의 단란주점출입 의혹 때 "징징거리지 마라"는 이준석의 질타가 소개됐다. 대선을 나흘 앞두고 있었던 서울집중유세 때 박근혜 후보 뒤에 선 이준석을 볼 수 있었다. 윤창중 대변인의 '정치적 창녀' 발언을 두고 "새누리당에도 상처 받을 분들이 많다"는 질책이 끝이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13일 앞으로 다가 왔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54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런데 영 예전 그 솜씨가 아니다. 상상을 초월한 인물의 등용, 전광석화와 같던 결단 그리고 파죽지세로 몰고 나가던 뚝심... 비대위와 선대위 당시에 보았던 '박근혜의 맛'을 찾을 길이 없다. 벌써부터 느긋해진 것일까, 아니면 수성(守城)모드로 변신 중일까.
박근혜 당선인의 직무수행에 대한 국민들 평가가 대체로 시원치 않다. 역대 당선인들의 지지율과 비교해 봐도 20~30%p 가량 뒤쳐진다. 왜 그럴까. 밀봉인사와 깜깜이 인수위 그리고 "제가 결정하면 여러분들은 지켜야 한다"는 일방통행에 국민들의 마음은 식어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요즘 박 당선인 주변에 '노(No)라고 말하는 인물'이 통 보이지를 않으니 말이다.
거안사위(居安思危). 평화로울 때 위태로워질 경우에 대비하라는 뜻과 함께 위기를 벗어나 편안해져도 그때 그 순간들을 기억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초심을 지키란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면할 외교·안보의 위기, 성장과 분배의 충돌,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국민통합의 과제,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당선인으로서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근혜의 남자들'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개성도 강하고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버럭버럭 대들기도 하고 비위에 거슬리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바로 그런 괘씸한 성품의 소유자들도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런 류의 인물들이 때로는 액셀러레이터의 역할도 하고 브레이크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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