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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또 한 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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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또 한 살 먹었다

입력
2013.02.1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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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계사년 설날이었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우리는 모두 한 살을 더 먹었다. 한 살 더 먹었으니 생각이나 행동이 작년과는 달라져야 한다.

1월 1일 신년을 맞아 뭔가 결심을 했던 사람은 그 결심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반성할 시점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많아지는 게 뭐어게?” “나이!”, 이런 수수께끼도 있는데, 먹을 만큼 먹었으면 사람은 누구나 나잇값을 해야 한다.

지금은 별로 그렇지도 않지만 한국에서는 나이가 곧 벼슬이었다. 어쩌다 무슨 시비가 벌어졌을 때 “너 몇 살이야?”하면 나이가 적은 쪽은 주눅이 들게 마련이었다. 아니, 주눅이 드는 게 예의였다.

어린 애들은 “너 몇 살이야? 아버지 이름 뭐냐?”하는 말을 들으면 개궂고 못된 짓을 하다가도 꽁무니를 빼곤 했다. 전통사회의 마을공동체가 거의 해체된 지금은 그런 풍경도 볼 수 없게 됐지만.

철없고 분별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흔히 “나이를 어디로 먹었냐?”, 심지어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었나?”하고 비난하는데, 대체 나이는 어디로 먹는 것일까? 사람에게는 얼굴의 주름살이 나이테다. 목주름도 나이를 잘 알려준다. 그런 주름들은 결국 입으로 먹은 나이가 신체 여러 군데로 번져나간 결과가 아닐까? 먹는 거라면 역시 입이다.

한국인들은 뭐든 먹는다. 나이도 먹고, 더위도 먹고, 좋은 마음이든 나쁜 마음이든 마음도 먹고, 겁도 겁나게 먹고, 욕도 신나게 먹고, 손자 손녀 애 봐주느라 애도 먹고, 잘못되면 미역국도 먹는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그래서 무엇이든 그렇게 먹는 걸까? “밥 한 알(고기 한 점)이 귀신 열(천 마리)을 쫓는다.”는 우리 속담은 먹고 사는 것의 중요성을 잘 일깨워준다.

“이 설움 저 설움 다 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라는 말도 있다. 일본 속담에는 “먹으려고 여윈다.”는 말이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몸이 마르도록 심하게 고생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설날에는 떡국을 먹지만, 진짜 생일에는 왜 미역국을 먹을까? 고구려 시대 사람들은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에 미역을 먹는다고 생각했고, 이때부터 사람들도 아기를 낳은 뒤에 미역국을 먹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 말에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됐다.

이 해산이 아기를 낳는다는 해산과 발음이 같아서 나라도 잃고 일자리도 잃은 자신들을 미역국 먹었다고 비하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시험에 떨어지거나 승진에서 밀릴 때 이 말을 쓰게 됐다고 한다. 맞는 설인지 모르겠지만, 생일에 먹는 미역국을 평소에는 먹으면 안 되는 셈이다.

우리 충청도 시골에서는 “너 몇 살 먹었니?”하고 물으면 “멥쌀도 먹고 찹쌀도 먹었슈.”하고 대답하는 농담이 있었다. 멥쌀 찹쌀 다 먹고 자라서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장성해 일가를 이루고 본인은 황혼을 맞게 된다.

나이를 먹는 것도 서러운데, 이 소중한 생을 아름답게 꾸려가기 위해 계사년 새해에는 골탕도 먹지 말고, 애도 먹지 말고, 미역국도 먹지 말고, 연탄가스도 먹지 말고, 앙심도 먹지 말고, 나쁜 마음도 먹지 말고, 욕도 먹지 말고, 겁도 먹지 말고, 뇌물도 먹지 말고, 아내나 자녀들에게 한 방 먹지도 말고, 한번 먹은 마음 변하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하자

그러면 창피한 것도 모르고 체면 차릴 줄도 모르고 성실하게 살아갈 줄도 모르는 사람의 나이는 대체 몇 살일까? 넉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넉살이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어쩌다 철이 들었다 하면 바로 노망 난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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