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한번 변변히 주지 못해 조카들에게 미안했는데 이제는 어깨를 펼 수 있을 것 같아요."(이재학씨)
"돌고 돌아 제자리에 왔습니다. 이번 설에는 아내와 그간 못다한 얘기를 실컷 할 거예요. 여름휴가 때는 파업 전처럼 가족들과 속초에서 담백한 명태껍질쌈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네요."(유충현씨)
8일 경기 평택시 통북동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위원회 사무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전날 쌍용차가 무급휴직자 454명(희망퇴직 1명 제외) 전원을 3월 1일 인사발령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모처럼 특별한 설날을 맞고 있었다. 영하 10도를 훨씬 밑돈 강추위에도 그들은 소박한 희망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충현(50)씨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먹튀'한 상하이차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라면서도 "일할 수 있게 돼 좋다"고 했다. 그는 2009년 8월 무급휴직 결정이 난 이후 한 번도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명절을 쇠러 가본 적이 없다. 생계를 잇기도 막막했기 때문이다. 막노동을 전전했고, 결혼 전 잠깐 디자인회사에서 일하던 부인도 다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 2학년이던 큰딸은 1년 간 휴학해야 했다. 생활비와 등록금 등으로 파업 이전 한 푼도 없던 은행빚이 6,000만원까지 늘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희망을 찾았다.
한주완(41)씨는 "아빠가 다시 일하게 됐다고 하니 딸들이 평소같지 않게 뺨에 뽀뽀를 해주더라고요. 어찌나 좋던지…. 가까운 곳이라도 가끔 두 딸과 여행 다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1995년 쌍용차에 입사한 그는 무급휴직 당시 떠돌이 생활을 했다. 경기 수원 용인, 충북 청주, 경남 함양 등지에서 상수도관ㆍ도시가스관 매설 작업과 포장이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그는 "쌍용차 무급휴직자라고 하면 괜한 말이 나올까 봐 평택에서는 일자리를 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감을 구하지 못할 때는 카드 돌려막기로 생활 아닌 생존을 해야 했고 이같은 생활의 스트레스로 몸무게는 23㎏이나 줄었다.
42개월 무급휴직 기간 동안 건설현장에서 배선작업을 했다는 이재학(45)씨는 "명절에 큰집이나 처가에 빈손으로 갈 때 그것만큼 나 자신이 초라하고 작아 보일 수가 없었는데 이제 설 선물을 들고 고향을 다시 찾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쌍용차 노동자들 중 일부는 우리가 복귀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등 서로 간의 가슴 속 응어리가 깊다"며 "우리의 복직이 오해로 얼룩진 쌍용차 사태의 실타래를 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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