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직권 조사결과 발표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법사찰 근절을 위한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가 대통령을 상대로 권고를 낸 것은 2001년 설립 이후 처음이어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지난해 4월 인권위 자체 결정에 따라 시작된 조사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불법사찰에 관여한 사실도 밝혀냈다. 지원관실이 조사한 불법사찰 429건 가운데 10건이 민정수석실의 하명을 받은 사건으로 드러났다. 민정수석실은 불법사찰을 실시한 사건 중 105건에 대한 사찰 결과를 보고 받기도 했다. 지난해 검찰이 '민정수석실의 개입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민정수석실이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보고까지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뒷북 권고'라는 비판은 비껴가기 어렵다. 의혹이 불거진 지 2년이나 지났을 뿐 아니라, 임기 보름 정도를 남긴 시점에서 대통령에 대한 권고가 무슨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2010년 7월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진정을 내자 6개월 동안 시간을 끌다 "수사 중인 사건은 각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했다. 이후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의 폭로로 이 문제가 불거져 인권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직권조사에 나선 것이다.
인권위가 가해 책임자와 실행자를 공개하지 않은데다 인권 침해의 구체적인 내용과 유형을 밝히지 않은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인권위는 지난 10개월 동안 피해자 50여 명의 진술을 받는 등 방대한 조사를 폈다. 그러고도 구체적인 조사 내용 공개와 가해자에 대한 징계요구는 하지 않은 채 대통령에게 추상성 높은 권고만 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으로 비쳐질 만하다.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와 마찬가지로 임기 말을 틈탄 전형적인 눈치보기란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인권보호 기관은 국민들의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피해구제와 명예회복을 해줄 수 있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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