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의 분량을 나타내는 고유 도량 단위 중에 '홉'이라는 게 있다. 예전에 소매점에서 기름이나 술 같은 것을 홉 단위로 판매했다. 1홉은 대략 180㎖인데, 이는 소주 반 병 분량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술집이나 소매점에서 보통 접하는 소주 한 병은 2홉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4홉들이 병에 넣은 소주도 판매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유리병은 생산되지 않는 것 같다. 성인 남자의 몸 안에는 대략 5,000㎖, 즉 5ℓ의 피가 있다. 사람의 혈액량은 몸무게의 13분의 1 정도로 알려져 있다. 5,000㎖를 홉으로 환산하면 28홉이 조금 못 된다. 나는 시적인 언술의 힘을 빌어, 사람의 입술에 28홉의 피가 들어 있다고 간주하려고 한다. 입술이 붉은 건 우리가 흐르는 피를 가지고 있고, 그 피가 붉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날카로운 메스로 입술을 그었다고 가정했을 때 피는 흐르고 흘러 28홉의 피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와 같은 설정은 난센스다. 왜냐하면 28홉의 피가 입술을 통해서 모두 쏟아져 나오기 전에, 그 사람의 숨은 과다출혈로 인해 끊어질 것이고 피 역시 계속 흐르지 않고 응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28홉의 피의 전위가 흐르고 있는 입술, 우린 입술을 통해 서로의 피와 닿는다. 우리는 입술을 통해 서로의 피의 흐름을 감지한다. 키스는 피와 피가 서로의 향기와 온도를 알아보는 인사법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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