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를 줄일 때는 양 무릎을 모아 발 모양을 알파벳 'A'자로 만들면 됩니다."
7일 오후 은빛 설원이 펼쳐진 강원 정선군 고한읍 강원랜드 하이원 스키장. 초보자 코스에 마련된 스키학교에서 한 여성 강사가 비지땀을 흘리며 스키어들을 지도하고 있다. 스키 폴을 쥐는 방법에서부터 넘어지는 요령까지 직접 시범을 보인다. 교육생들 앞에서 유연한 코너링을 선보이며 눈보라를 일으키는 등 직업선수 뺨치는 솜씨를 뽐내는 그는 2008년 중국에서 정선으로 시집 온 윤춘묘(26ㆍ여)씨다.
윤씨는 이번 겨울부터 중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하이원 스키장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이민 초기 식당 등에서 일할 때와는 달리 전문 직업인이 되면서 자긍심이 생겼다.
조선족인 윤씨의 진가는 중국 관광객이 찾아왔을 때 유감없이 발휘된다.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가 전문 스키강사와 통역으로 '1인 2역'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매년 리조트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윤씨의 활약이 기대된다는 게 하이원 측의 설명이다. 그는 "좋아하는 스키를 타는 일을 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며 "직장에서는 전문 강사로, 가정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로의 역할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윤씨와 함께 원어민 스키강사 요원으로 채용된 리타오 레지나 린(31ㆍ여)씨와 비옹 레베에라(31ㆍ여)씨는 필리핀 출신의 결혼 이주여성.
지난해 여름 한국에 시집오기 전까지 직접 눈 구경을 하지 못했던 이들은 올 겨울 하이원 다문화스키 교실을 통해 겨울스포츠에 입문했다. 스키실력은 아직 조금은 서투르지만, 언젠가는 은빛 설원을 질주할 꿈을 갖고 있다.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은 외국인 전문 스키강사와 통역으로 일하게 된다.
린씨는 "눈 위에서 일하는 직업을 갖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 주겠다"고 활짝 웃었다. 레베에라씨는 "이제야 진정한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이원 홍보팀 관계자는 "다문화가정 이주여성에게 사회 진출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원어민 강사 확보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스키고객에 대한 서비스 질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된다"며 "효과가 클 경우 다문화가정 이주여성 채용을 안내, 통역 등 다른 직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은성기자 esp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