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은(24)은 들꽃 같은 배우다. 하루가 멀다 않고 사고를 치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군말 한 번 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당찬 소녀(KBS '바람불어 좋은 날'의 권오복),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제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또순이(KBS '결혼 못하는 남자'의 정유진) 등 척박한 환경에서도 향기를 피워내는 들꽃 같은 역할을 자신의 이야기인양 연기해왔다.
그렇게 꿋꿋함의 화신 같았던 김소은이 효종임금의 넷째 딸 숙휘공주로 분한 MBC 사극 '마의'에서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한복을 차려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으면 비련의 여주인공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련만, "백 의생"을 연발하며 주인공 백광현을 종종걸음으로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볼이라도 꼬집어주고 싶은 귀여운 막내 여동생 같다. 공주의 도도하고 건방진 태도마저 사랑스러움으로 승화시킨 김소은을 설을 앞둔 3일 '마의'를 촬영하는 경기 용인의 세트장에서 만났다. 코를 훌쩍거리며 기자에게 건넨 첫 마디는 "추워요 추워. 발열내복을 4장 껴 입어도 추워요"였다.
분홍색 당의를 입고 걸어오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러고 보니 김소은은 유난히 공주 역할과 인연이 깊다. 당차고 강인한 고려 공주 황보수(KBS '천추태후')와 조선 숙휘공주 연기로 각각 2009년 KBS, 지난해 MBC의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사극 대본에는 생소한 단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 대사 톤은 제 입에 맞는 듯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극심한 추위에 빡빡한 촬영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칠 만도 하겠지만 김소은은 "이제까지 찍었던 드라마 중 가장 재미있다"고 할 정도로 현장 분위기가 좋아 피곤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고 했다. 사모하는 백 의생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아픈 척 하려고 얼굴에 열 찜질을 하는 장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며 열을 내는 주머니를 4개나 가져와 얼굴을 감싼다. '올드 미스' 곽상궁(안여진)에게는 "가자 아줌마"라는 애드리브로 촬영 현장을를 웃음 도가니로 몰아 넣는다. "공주가 남편을 잃고 삼 년 상을 마치고 왔는데도 감독님께서 '철 들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앞으로도 열심히 웃겨드리렵니다." 극의 유쾌함을 더하는 숙휘공주와 수발 드는 곽상궁, 호위무사 마도흠(이관훈)을 팬들은 '공주 트리오'라고 부른다.
이 참에 개그 본능을 깨워 코믹한 역할로 발전시켜보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김소은은 고개를 저었다. "한 쪽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듯해요. 아직 다양한 역할을 해본 것도 아니고요. 악역, 여전사 등 제 내면의 모습을 다 꺼내보고 싶은 게 꿈입니다. 카멜레온처럼요."
타고난 응석받이 공주처럼 집에서도 공주 대접 받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김소은은 어머니가 연예인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고, 열심히 연기 공부를 하면서 오디션을 통과해 꿈을 이룬 '가족의 후원 아래 만들어진 배우'다. "가족들이 모이면 온갖 심부름을 다 시켜요. 제가 '나도 연예인이야. 이렇게 무거운 걸 어떻게 들어'라고 하면 입을 모아 '뻥 치지 마'라고 해요. 집에 들어가면 연예인이라는 생각 아예 안 해요."
설 명절에 김소은은 집안 가마솥 담당이었다. 어려서부터 아궁이에 불 지피기를 워낙 잘 해 외할머니가 그에게 밥 짓는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사촌들하고 부엌에 모여서 코 밑에 검둥이 묻을 때까지 아궁이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요. 이번 설에는 촬영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지만 잠시라도 짬을 내서 친척들 얼굴이라도 봐야죠. 한국일보 독자 여러분도 이번 설에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마의'와 숙휘공주도 끝까지 사랑해주세요."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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