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 베를린 브란덴브루크 문 앞에 높이 4.5m 길이 25m의 대형 조명설치작품이 선보였다. '사라진 베를린 장벽'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한국 작가 이은숙(57)이다. 설치 작품에는 조국 분단으로 생이별한 이산가족 5,000명의 이름과 사진을 담았다. 독일 사람들 이야기일까? 아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분단의 아픔을 끌어 안고 살아가는 한국의 이산가족 이야기다.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린 통일 독일에서 한반도 분단을 묘사한 이 작품의 사진은 당시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1면을 장식했고 BBC, 로이터, CNN에도 보도됐다. 베를린의 한 방송은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었다.
이씨가 한국전 당시 피란민의 모습과 이산가족 5,000명의 이름, 사연을 담은 새로운 조명설치작품을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23일 임진각 자유의다리 민통선 철책선에서 선보인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주년을 기념한 작업으로 작품 이름을 '정전 60년…그리운 북쪽 가족을 부른다'로 정했다.
작가는 투명한 폴리에스테르 필름에 다양한 색상의 형광 실을 압착시켜 얽히고 설킨 이미지를 만든 뒤 그것을 높이 2m, 폭 60㎝~2m의 철제 구조물에 붙인다. 이산가족의 이름에서 따온 한글 자모 모양의 구조물 안에는 자외선 발광체가 있다. 전기를 연결하면 이 발광체의 빛을 형광실이 반사해 실 자체가 발광하는 것처럼 보인다. 얽혀 있는 실은 고달픈 한국 현대사의 상징이자 그 실타래에서 풀려나고픈 희망과 염원을 동시에 의미한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처럼 이 조형물이 철책선을 따라 20여m 이어진다.
"원래 이 작업은 수 ㎞에 걸쳐 비무장지대(DMZ) 내 철책선에서 펼쳐 보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군에서 허가하지 않아 임진각 자유의다리쪽으로 바꿨지요." DMZ 전시의 꿈을 접은 건 물론 아니다. 이씨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서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그에 앞서 올해는 "광화문 좌우 경복궁 담을 따라 작품 설치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비롯해 이산가족을 주제로 한 일련의 설치 작업은 작가의 집안 내력과도 연관이 있다. 함흥에서 월남해 조개탄을 사용하는 대성난로를 만들어 자수성가한 아버지, 평양의대를 다니다가 거제도로 피난 온 어머니 모두 이산의 아픔을 안고 한평생을 살았다. 특히 아버지는 남으로 내려오기 전에 이미 결혼해 자식이 넷이나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의 생사를 알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아버지는 결국 모든 걸 단념하고 말았어요. 많은 이산가족이 이렇게 고생하다 모든 걸 체념하고말지요."
이화여대(섬유예술과), 홍익대(공예 전공)를 나온 이씨의 이름은 국내에서는 낯설다. 비닐과 형광실을 이용한 작품을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유치하다"는 혹평만 받았다. 오히려 그의 작품을 눈여겨봐 준 건 독일의 큐레이터였다. 1999년 독일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은 뒤 아예 캐나다로 이민을 가 캐나다와 독일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다시 한국에 온 건 아버지의 병세가 깊어진 2년쯤 전이다.
작가가 다섯 살 때 지었다는 숙명여대 인근 서울 효창동 1번지 집 거실에는 어릴 적 가족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다. 그런데 어느 사진이고 작가의 다섯 형제와 어머니는 있는데 아버지가 없다. "바빠서 가족사진 찍을 여유가 없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 문득 일부러 사진을 찍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임종을 앞두고 유난히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이 아직도 그의 귓전을 맴돈다. "혼자 남쪽으로 내려올 때 두고 온 아이들이 큰 애가 열 살, 막내가 한 살이었어든. 막내가 엄마 등에 업혀 떠나가는 내 얼굴을 보고 방긋 웃는 거야. 그게 잊히지 않아." 아버지의 말을 전하면서 작가는 그만 울고 말았다.
임진각에 불 밝힐 그의 작품은 96세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북녘 자식들 얼굴을 잊지 못한 아버지의 자식사랑과 작가 자신의 이복 언니오빠들에 대한 그리움이자, 모든 이산가족들의 애달픔을 대변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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