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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바로 서지 않으면

입력
2013.02.0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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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TV가 "오바마의 건강보험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보도하지 않았다"고 경쟁사들의 '편파성'을 조롱하는 광고를 주요 신문에 실었다. 당연히 격한 공방이 뒤따랐다. 3년 반쯤 전 일이다. 이듬해 리비아사태 때도 폭스는 "CNN 취재진 때문에 군 작전이 방해 받았다"고 시비를 걸었다. 서로간의 시각 차를 인정해온 미국 언론풍토에서 경쟁매체를 서슴없이 공격하는 폭스의 행태는 전에 없던 것이다.

극단적 논조에다 이런 식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폭스뉴스는 창립 10여 년 만에 시청률에서 CNN은 물론, NBC 등 기존 거대방송 뉴스까지 제쳤다. 그러나 같은 기간 방송 전체의 신뢰도는 1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전적으로 폭스에 혐의를 돌릴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들의 '소란'이 동반 신뢰추락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은 크다.

90년대 일본에선 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두고 진보성향의 아사히와 우익 산케이 두 신문이 상대를 비판하며 논전을 벌였다. 담화를 촉발한 구 일본군 관계자 증언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것이어서 사실 언론의 기본에서 크게 이탈한 싸움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언론사간 상호 비방은 웬만한 나라에선 드문 일이다.

'동업자 의식'이 유난했던 우리 언론계에서도 매체간 비난은 오랜 금기였다. 솔직히 언론의 세속적 권력과, 담합의 편의에 안주한 '침묵의 카르텔'에 가까운 것이었다. 관행이 깨진 것은 80년대 말 이념진영간 대립이 신문업계로 전이되면서부터다. 신생 진보언론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쉬운 방법으로 기존매체를 대놓고 비판하면서 시작된 것이 곧 언론 전반에 익숙한 풍토로 자리잡았다.

한국 신문의 유별난 정파성은 이 싸움문화가 일조한 탓도 크다. 결과는 역시 신뢰의 동반 추락, 그로 인한 신문시장 공동의 위기였다. 2000년대 들어 단 10년 사이에 51%에서 25%로 반 토막 난 구독률 저변에는 41%에서 12%로 떨어진 신뢰도 급락이 있었다. 인터넷 등 매체환경 변화 탓만도 아닌 것이다. 압축한 사실 전달 위주인 TV뉴스보다 신문 신뢰도가 떨어지는 원인도 이 때문이다. 이 또한 외국에선 보기 힘든 예외적 현상이다.

이런 판국에 최근 또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유력 경제지를 자처하는 두 경쟁신문의 난타전이다. 그래도 정파적 공방이 겉으론 '정의'(대개 저만의 정의이기 일쑤지만)를 명분 삼는데 비해, 이번 싸움은 아예 그런 외피마저 벗어 던졌다는 점에서 훨씬 질 나쁜 양상이다. 한 눈에 봐도 한편의 사주(社主)를 건드렸다 해서 시작된 싸움이다.

통상적 보도에 처음 발끈한 측이 심했으나, 굳이 '죄질'의 경중을 따질 건 아니다. 난투 과정에서 독자들 눈 앞에 까발려진 건 언론 정도를 일탈한 지면 사유화, 일반기업 뺨치는 자사(自社) 이기주의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건강한 사회발전과 바른 여론형성을 돕는 공공저널리즘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 않아도 조사마다 언론 위기의 주요인으로 '공공성의 실종'이 빠짐없이 지목되지 않던가. 그러므로 이번 일은 일부 신문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신문 신뢰추락의 원인을 극명하게 노정하고, 나아가 언론 전반에 대한 일반의 불신을 더욱 심화하고 확대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일만한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우리사회의 문제들이 속속 노출되고, 치유방식들이 제시되면서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상황이다. 그 중심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게 언론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정치권, 기업 등 다른 부문의 혁신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언론의 공적 책임감 회복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고는 더 나은 나라의 미래도 장담키 어렵다. 동업자 입장을 잠시 접고, 매체비평에나 어울릴 사안을 이례적으로 언급한 이유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하긴, 남 얘기하듯 했지만 필자를 포함한 언론인 대부분 역시 온전히 떳떳하기 어렵다는 점은 굳이 부연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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