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마련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철학과 정책 방향이 담긴 청사진 성격이 강하지만, 야권은 물론 여당 일부와 정부의 일부 부처에서도 공개적인 비판과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인수위가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정부조직 개편안을 마련해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 논의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봤다.
의견 개진 기회 보장
전문가들은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생산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선 충분한 설명과 활발한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인수위가 새 정부의 국정운영 목표에 따라 정부조직 개편안을 제시했겠지만 어떤 문제점이 있어서 개편하려는 것인지, 개편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인수위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다양한 의견을 듣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통희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수위가 짧은 시간 안에 정부조직 개편 목표, 기존조직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등을 완벽하게 제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해 당사자인 부처들의 의견과 전문가들의 조언이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 이기주의 및 정파주의 탈피
외교통상부가 통상교섭 업무를 산업통상자원부로 넘기는 방안에 대해 반발하는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도 조직 지키기에 나서자 부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교과부와 방통위는 각각 산학협력 기능과 지상파·홈쇼핑 인허가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특정 업무를 어느 부처를 통해 시행할 것인지는 행정의 효율성과 정치적 판단 등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라며 "특정 부처가 이해관계를 앞세워 조직을 자기 밥그릇처럼 여기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제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가 기능주의로 구분돼 있는 한 각 부처는 나름의 논리로 이기적 주장을 내놓을 공산이 크다"며 "부처 이기주의를 누그러뜨리려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조정 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 부처와 국회 상임위, 이익단체 등이 연계된 이기주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전문가는 해양수산부 유치 지역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을 겨냥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앞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다는 책임 의식이 절실하다"면서 여야의 정파주의도 극복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장기적 체제 염두에 둬야
정부조직 개편이 중장기적인 국가 비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박통희 교수는 "과거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제도를 도입했지만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고, 이명박정부에선 눈 앞에 보이는 교육 문제에 밀려 과학기술행정이 찬밥 신세였다"면서 "충분한 대안 없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경제부총리를 맡기고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는 건 시행착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준형 교수는 "정부조직 개편이 제대로 되려면 각 부처의 기능과 역할, 문제점 등을 면밀히 점검한 뒤에 진행돼야 하는 만큼 인수위가 이를 주도하는 건 무리"라며 "공학적인 조직 개편에 힘을 쓰기보다는 이를 중장기 과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통합당에서는 인수위의 일방통행식 논의 구조에 대한 비판과 부처 이기주의에 대한 지적이 함께 나왔다. 이는 새 정부 출범에 딴죽을 걸 수 없다는 부담과 선명 야당으로서의 책무를 동시에 감안한 입장으로 보인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새 정부 국정 5년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중요한 문제인 만큼 소홀히 다루지 않겠다"면서도 "부처 이기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큰 틀에서는 당선인의 구상을 존중한다"면서 "그러나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철저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는 통상 기능 이관과 관련, "여당 내에서도 반대 주장이 나오는데 박 당선인이 부처 이기주의라고 무시하고 찍어 누르듯이 관철하는 것은 여당을 허수아비로, 야당을 식물 야당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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