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시 산하 SH공사 이종수 사장이 낸 사표를 하루 만에 반려하고, 시 고위관계자를 직접 보내 사퇴를 거듭 만류했지만, 이 사장은 결국 이를 고사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 사장으로서는 서울시가 SH공사에 요구해온 빡빡한 부채감축 스케줄과 재무조정 가이드라인을 맞추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마곡ㆍ 문정ㆍ은평지구의 택지 매각을 둘러싸고 목표실적 설정과 정책방향 결정을 둘러싸고 양측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박 시장은 이날 문승국 행정2부시장을 이 사장에게 보내 "이 사장이 임대주택 8만 가구 공급과 SH공사 채무 감축의 적임자이며 변함없이 신뢰한다"는 말을 전하며 "사퇴의사를 접고 업무에 복귀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문 부시장에게 "사퇴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장은 이날 출근하지 않고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자택에만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박 시장은 금명간 이 사장을 직접 찾아가 업무에 복귀하도록 설득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장이 사퇴 의지를 꺾지 않은 데는, 시의 적극적인 정책 협조 없이는 박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SH공사의 부채를 감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SH공사는 지난해부터 ▦현재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75%로 낮춰 분양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주택과 동일한 85% 수준으로 단일화해 줄 것 ▦분양주택 공급시기를 현재 공정률 80%에서 60%로 조정해 3개월 가량 조기에 자금 회수하게 해 줄 것 ▦마곡산업단지 조기 분양 및 민간매각허용 등을 시에 요청해 왔다. 하지만 시 측은 4일 업무보고에서도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에 이 사장이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SH공사의 한 관계자는 "분양가 단일화 등에 대한 시의 정책 협조 없이는 올해 말까지 SH공사의 채무를 3조원가량 줄여 9조5,000억원 수준으로 맞추라는 박 시장의 지시를 이행하기가 불가능하다"며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SH공사 직원들이 오히려 시로부터 질책을 받고 실적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이 사장이 스스로 용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은평뉴타운 현장시장실에서 부실공사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올 때부터 양측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은 사실"이라며 "전날 업무보고 자리에서 박 시장이'3개월 내에 부채 3조원을 감축하지 못하면 임원 모두 자리는 내놔야 한다. 오늘 모두 사표를 제출하라'고 한 것은 함께 노력하자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시는 지난해 말 서울메트로 사장이 임기를 8개월 넘게 남기고 돌연 사직한 데 이어 SH공사 사장도 임기를 2년여 남기고 갑작스레 사의를 표하는 등 부채 감축 계획을 두고 산하기관과 잇단 마찰이 생기는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 고위관계자는 "박 시장이 조만간 이 사장을 직접 만나 다시 설득할 것"이라며 "SH공사의 부채 감축 문제도 목표로 한 시점까지 시간이 충분한 만큼 힘을 합쳐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김현빈기자 hbku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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