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과 명동예술극장, 옛 코스모스 백화점을 잇는 길은 겨울이면 유난히 춥다. 동서로 난 길 남쪽을 건물들이 막아 해가 들지 않는데다 성당 앞 고갯길을 달려 내려온 바람도 차다. 눈 내린 날 아침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이려고 가게 바로 앞의 눈은 서둘러 치워지지만, 인도와 차도 경계석 부근에 수북이 밀쳐져 쌓이고, 점포가 없는 예술극장 앞 등은 일찌감치 빙판이 된다. 그런 낯익은 풍경이 그제 아침 출근길에는 일변했다.
■ 언제 눈이 내렸나 싶게 화강암 보도 블록이 드러났고, 차도까지 말끔했다. 가게 종업원일 듯한 청년들이 눈을 밀고, 삽으로 퍼 나르고, 빗자루로 쓸어내고 있었다. 아예 반팔 셔츠 차림으로 땀을 흘리는 청년도 있었다. 상업적 이해가 분명한 명동의 변화이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내 집 앞 눈치우기'가 시작된 것이 반가웠다. 어릴 적 눈이 내리면 마당에서 시작해 집밖 골목과 동구 밖까지 쓸어 길부터 냈던 것도 실은 손님 맞이를 위해서였지 않은가.
■ 주택가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일상 생활에서 손님 맞이가 사라진 지 오래이고, 잠깐의 육체노동도 귀찮아서다. 눈이 가득 쌓여 차 댈 곳이 없어도 차가 섰다가 빠져나간 자리를 찾으려고만 애쓸 뿐, 눈을 치워 주차공간을 확보하려 하지 않는다. 아파트 관리비를 낮추려고 경비원을 최소로 줄이고, 그것도 나이 지긋한 사람만 쓰는 마당에 그들에게 기댈 수도 없다. '내 집 앞 눈 치우기' 조례에 대한 관심도 과태료에만 집중된다.
■ 산업화로 삶의 양식이 크게 바뀌기도 했지만, 권리 인식만 살찌우고 의무 감각은 무디게 한 '민주화 편식'탓이 크다. 눈과 낙엽, 쓰레기를 제때 치우도록 강력한 법적 의무가 지워진 구미 선진국 어디서도 세금이나 관리비를 내면 그만 아니냐는 불평은 쏟아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집 안은 몰라도, 남의 눈에 보이는 곳이라도 깔끔히 해서 이웃에 정서적 폐를 끼치지 말자는 자기 규율과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눈 내릴 때마다 그리운 마음가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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