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만들고, 건물도 만들고, 적을 만나면 싸우게 하고, 무기나 보석을 획득하게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연합을 형성하게도 하고, 시장에서 화폐로써 무기와 식량을 사도록 하고, 식량이 없으면 농사를 지어 생활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작년 초 어느 게임 개발회사에서 일하는 분과의 상담 도중에 나온 대화이다. 그는 RPG(롤플레잉게임) 개발자이자 기획자인데 직접 게임 프로그래밍까지 도맡아서 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가상의 공간 속이긴 하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개발자인 자신이 기획하고 만든 환경 내에서 자신이 의도한 방식에 따라 게임 하는 것을 보면 마치 신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게다가 게임 속에서 무기를 사거나 식량을 사기 위한 게임머니를 두고 사람들이 실생활같이 서로 흥정하고 거래하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고 했다.
"제 입장에서의 게임머니는 그냥 하나의 프로그래밍 속의 코드일 뿐이고, 단지 숫자이자 언어에 불과한데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머니와 아이템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될 때도 많아요"
필자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가상 속 세계나 우리의 실생활은 서로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시 그의 시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를 바라보니, 기획자이자 개발자이신 조물주께서 임의로 어떤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지구라고 부르는 곳이고, 그 지구라는 공간에서 5대양 6대주로 나뉘어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각각의 배역을 부여했다.
아시아권에 있는 사람들은 황색의 피부에 유교사상을 근간으로 자리잡은 캐릭터를 형성했고, 유럽권에 있는 사람들은 흰색의 피부에 기독교 사상을 근간으로 자리잡았고 그 대륙 내에서 각 국가별로 또 나뉘어지고 그 국가 내에서도 계급과 직급별 레벨(Level)을 두어 상하를 구분하게 했다.
그리고, 각 지역별 국가별로 기획자인 조물주가 의도한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기쁨, 슬픔, 노여움, 탐욕, 희생 등의 다양한 상황이 나타나게끔 하여 어떤 스토리 라인을 형성한다. 더불어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부자인 사람, 가난한 사람 등 제각각 특징이 있는 그 어떤 캐릭터를 형성해서 살아가게 한다.
마치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황당한 내용일 수 있겠으나 역술인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몹시도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저는 RPG 게임을 잘 몰라서 여쭙습니다만 그 게임 속에서 사람들간에 계급도 존재하고 '몹'이라고 불리는 '몬스터'를 사냥하게끔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모든 행동에 대해 일일이 전부 프로그래밍을 하시는 건가요? 이를테면 들판에서 몬스터를 만나면 싸울 수도 있고 도망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아주 사소한 행동까지도 미리 프로그래밍을 해 놓는지가 궁금하군요" 라고 필자가 질문했다.
이에 "아닙니다. 기본적인 규칙만 정해놓고 아주 사소한 행동 패턴에 대해서는 게이머들의 자율에 맡깁니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행동과 관련된 세밀하고 다양한 패턴 등은 A.I 라 불리는 '게임인공지능' 에 의지하는 편 입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게임 속 캐릭터들의 행동 패턴에는 일정한 규칙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옆에 다른 캐릭터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 자동으로 일정 간격을 유지하게끔 한다거나, 빨리 걷거나 뛰는 경우 자동으로 머리카락이 흩날리게 하게 하는 등 반복되는 행동 패턴에 대해서는 물리엔진 이라는 게임엔진과 함께 서로 결합하여 자동화 시켜둔다고 한다.
어려운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는데 3D 게임이나 '반제의 제왕'과 같은 영화에서 보면 대규모 전투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3D 애니메이션 모션 캡쳐와 같은 첨단기술을 동원하여 만드는 것이라 한다.
각각의 사람 모양의 3D 오브젝트들은 자동으로 다양한 액션을 취하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데 게임인공지능이 그것과 흡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필자는 이 부분에서 예전부터 항상 가졌던 한 의구심에 대한 실마리가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듯 했다.
그 의구심이란, '인간은 무슨 이유로 각각 다른 운명으로 살게 되는 것일까?' 였는데, 이 의구심 때문에 필자는 조물주를 만난다면 꼭 묻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원망의 목소리를 낼 것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평생 동안 고생 한번 안하고 편하게 먹고 자다가 생을 마감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등 같은 사주라고 하더라도 각기 다양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근원적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혹자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어떤 종교도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다. 따撰? 필자는 조물주를 만나면 왜 내 배역은 이런 것이며 내 캐릭터는 이런 것인지 꼭 묻고 싶었다. 아니 그 누구라도 조물주를 만나면 필자와 마찬가지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 낼 것 이다.
그래서였을까, 게임 개발할 때만큼은 자신이 신(神)이 된듯한 사람을 만났으니 혹시 조물주의 의향도 간접적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캐릭터를 부여할 때 처음부터 강한 자, 약한 자, 부자인 자, 가난한 자 등을 정해 놓으셨나요?" 라고 필자가 그 분에게 질문하자 그는 "네, 당연히 정해 놓아야만 합니다. 그런 기준이 없으면 게임 자체가 진행도 안되고 흥미도 떨어져요" 라고 답했다.
그래서 필자는 바로 물었다. "만약 강한 자, 부자 캐릭터가 아닌 처음부터 가난한 자, 약한 캐릭터를 부여 받았다면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몹시도 억울할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밀리면서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라고 하자 그는 웃으며, "게임이 흥미롭게 진행되려면 어쩔 수 없어요. 당사자들은 다소 억울하겠지만 그래야만 재미가 있고요. 점점 강해지는 과정을 겪어야 애착도 더 많이 가지게 되거든요"
이 말을 듣자 필자의 머리에는 참 많은 생각들이 맴돌았다.
조물주의 의도가 위 개발자와 꼭 같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의도가 있다면 당사자인 우리들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부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당한 현실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좋은 터에서 좋은 사주(四柱)를 받아 태어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귀격(貴格)으로 분류되어 사회의 리더로써 활약하는 것 또한 흔히 볼 수 있다.
좋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면 분명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기본적인 바탕이 되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태어나기 전부터 좋은 운(運)이 따라야만 되는 것 역시 틀림 없겠다.
역술인 부경(赴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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