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1·29 특별사면에 대한 글을 쓴다니까 주변 기자들이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구문(舊聞) 아니냐"는 것이다. 기자들조차 그렇게 느끼는데 일반 국민이야 오죽할까 하는 생각에 순간 글쓰기가 망설여졌다. 특사 문제가 잊혀진 것은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 근성 탓이기도 하지만 특사 결정 당일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하고 북한이 잇따라 3차 핵실험 위협을 하는 상황에 함께 묻힌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특사 문제를 다시 꺼낸 것은 현 정권은 물론 역대 정권에서 특사가 이뤄질 때마다 제기됐다 유야무야 된 '대통령 사면권 제한' 법 개정이 이번 만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대통령 사면권 남용을 막기 위한 법 개정 시도는 역대 대통령이 특사를 단행할 때마다 제기된 단골 메뉴다. 현행 사면법은 사면 대상자 선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하는 등의 내용으로 2011년과 2012년 잇따라 개정됐다. 하지만 핵심 내용인 사면대상 선정 기준이나 사법부, 국회 동의 등 감시 장치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번 1ㆍ29 특사만 봐도 사면심사위원회는 야당으로부터 대통령의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매번 사면법 개정이 거론되다 흐지부지되는 것은 정권을 잡은 주체가 특사라는 막강한 권한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참여정부 때 더욱 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전 정권들에 비해 유난히 많은 측근들을 풀어줘 '측근 특사'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 이전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한 사면법 개정 요구는 정치인 뿐 아니라 비리 재벌총수의 사면까지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채워졌던 것이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자신의 후원회장이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지난해 8월 사망)과 대선 캠프 원로인 정대철ㆍ이상수 전 의원을, 2006년에는 최측근인 안희정(현 충남도지사)씨와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을, 임기말인 2007년 12월에는 자신의 집사로 불린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을 사면했다.
이번 1·29 특사도 '측근 특사'라는 논란을 일으키며 사면법 개정을 재이슈화했다. 이 대통령이 '정치적 멘토'라고 부를 만큼 현 정권 창업 공신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려온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특사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 정권 핵심 창업 공신들 모임인 '6인회' 멤버였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효재 전 수석 등이 혜택을 입었다.
여야는 물론 차기 권력까지 모두 입을 모아 사면법 개정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1ㆍ29 특사가 가져온 긍정적 측면이다.
"조선시대 임금도 안 한 무모한 짓"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 등 비난을 퍼부었던 민주통합당은 대통령 사면권 제한을 위한 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번 특사에 대한 국회 청문회까지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잘못된 관행을 확실히 바로 잡을 것"이라며 개정 의지를 보였다.
역대 사면법 개정을 주로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요구했던 데 비해 환경은 어느 때보다 나아진 셈이다. 무엇보다 국민 법 감정이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다. 이번 특사가 전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음에도 더 큰 비판을 받는 것은 이러한 국민의 향상된 의식 때문이다.
헌정질서 파괴 범죄, 정치자금법ㆍ선거법 위반, 부패사범 등을 제외시키는 등 이미 수 년간 특사 대상이나 절차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정치권이, 특히 박 당선인이 현재의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사면법 개정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침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지난 대선에서 공통으로 내건 공약을 처리하겠다니 여기에 사면법 개정을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측근 특사 논란이나 사면법 개정이 앞으로도 '구문'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은 언론의 몫일 것이다.
김동국 정치부차장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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