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도입 이후 새로운 사법 시스템으로 자리잡아 간다는 평가를 받는 국민참여재판이 유독 변호사업계에서는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일 한국일보가 국민참여재판 대상 범죄가 형사합의부 사건 전체로 확대된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서울지역 법원 5곳(서울중앙, 동부, 남부, 북부, 서부)에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 68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국선이 아닌 변호사가 재판을 수임한 건수는 11건(16.2%)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57건은 전부 법원이 지정한 국선 변호사들이 맡아 처리했다.
이는 사선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거나,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는 사건의 수임을 꺼리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2008년 도입 첫 해 64건이었던 국민참여재판은 2009년 95건, 2010년 162건, 2011년 253건, 지난해 305건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배심원 평결에 사실상 기속력을 부여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등 재판의 권한과 범위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업계의 반응은 아직 냉랭하다. 법원은 최근 변호사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국민참여재판이 확대되려면 변호사업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이라며 협조를 구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배심제에 대한 불신이다. 한 대형 로펌 고위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이 '여론재판'을 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대형 로펌이 주로 맡는 기업 사건이나 정치인 금품수수 사건처럼 사실관계가 복잡한 사건의 경우 배심원들이 과연 사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하는 것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은 판결 예측이 힘든데, 의뢰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서 모험을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이 배심원에게 증거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고 쟁점 정리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 재판보다 변호사에게 부담이 되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또 판사와의 인맥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변호사들에게는 기피 요인의 하나가 된다. 한 개업 변호사는 "개인적 친분을 통해 판사를 설득하는 것도 재판 전략인데, 국민참여재판을 하면 그 유용한 무기가 하나 없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은 편견이나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법원의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5년 간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이 일치한 비율이 92.2%에 달했고, 무죄율은 일반 재판보다 8배가량 높았다. 서울동부지법 공보담당 김영진 판사는 "우리 법원에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은 전부 국선 변호사가 맡았지만 피고인들이 무죄를 받아낸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판사 재직시 국민참여재판을 직접 진행했던 장상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소수의 법률전문가들이 사법권을 독점하는 나라는 이제 문명국 중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며 "우리 변호사업계도 국민참여재판을 시대적 흐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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