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 골목에 검은색 패딩점퍼에 청바지 차림의 한 남성이 어슬렁거렸다. 이따금 멈춰서곤 하던 남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품에서 A4용지 절반 크기의 전단 한 움큼을 꺼내 건물 입구와 화단에 슬그머니 놔두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남성이 놓고 간 전단에는 낯뜨거운 반라의 여성 사진과 함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누가 봐도 성매매를 유혹하는 불법 광고 전단이었다.
이 남성의 뒤에는 또 다른 두 명의 남성이 따라붙었다. 성매매 전단 배포를 단속 중인 경찰이었다. 경찰 두 명은 남성과 약 5m 거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이따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은밀하게 휴대폰의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성매매 전단을 뿌리는 모습은 휴대폰에 고스란히 저장됐다.
증거를 확보한 경찰은 이 남성을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또 전단에 기재된 강남구 대치동의 한 오피스텔도 급습해 성매매를 한 여성 2명과 성매수자 오모(37)씨를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성매매 전단 배포 남성을 잡기 위해 경찰 두 명은 3시간 동안 약 3㎞ 정도 뒤를 밟아야 했다. 이번 경우는 그나마 성공한 사례지만 전단 배포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지능화돼 단속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참다 못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쳤다. '대한민국 유흥 1번지' 강남에서 성매매 광고 전단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3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경찰과 강남구청은 올해부터 합동으로 성매매 전단 단속에 돌입했다. 서울경찰청 및 강남ㆍ서초경찰서, 강남구청 간 협의체를 신설해 핫라인을 구축했고 구청의 성매매 전단 단속에 경찰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17일과 30일 벌인 대대적인 합동 단속 때는 불법 광고 전단 배포자 등 18명을 검거하고 전단 28만장을 압수했다. 경찰은 단속에 적발된 5개 업체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8억7,000만원 상당을 성매매로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했다.
경찰과 강남구청은 앞으로 유흥가 일대 등 주요 지역에 성매매 전단 배포자 검거용 CC(폐쇄회로)TV를 설치할 계획이다. 처벌도 한층 강화해 업자에게는 형사처벌과 함께 행정처분(장당 1만5,000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광고 전단을 성매매의 중요한 고리로 판단하고 수사를 하던 경찰이 구청과 손을 잡은 것은 배포자 적발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수십 장씩 뿌리는 수법이나 승용차 바닥을 뚫어 달리면서 바닥에 까는 방법 등은 이미 고전적 수법이 됐다. 최근에는 보행자인 척 다니며 무차별로 살포하는 방식이 유행을 타고 있다. 선릉역 사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김모(32)씨는 "멀쩡해 보이는 남자가 걸어가다 갑자기 두꺼운 외투에서 수십 장을 꺼내 휙 뿌린다"며 "얼마나 빠른지 손이 안 보일 지경"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성매매 업체들이 경찰관 신상 정보를 공유해 단속을 피하는 것도 경찰에게는 골칫거리다. 한 경찰관은 "전단에 적힌 번호로 손님인척 전화를 해도 중간연락책인 일명 '셔틀실장'이 경찰들을 알아본다"고 토로했다.
사법권이 없어 단속에 한계를 느끼던 강남구청도 합동 단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주민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박모(51)씨는 "어린 아들이 성매매 전단을 딱지인 줄 알고 줍곤 했다"며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단속으로 성매매 전단이 완전히 뿌리 뽑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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