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대선 직전 마지막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법을 만든다"고 밝혀 선행학습 금지법 논란은 시작됐다.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을 제정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시험을 규제하겠다는 애초의 공약에서 한걸음 나아간 것으로, 위헌성과 현실성 여부 등 논란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관계자는 3일 "새 정부에서 선행학습 금지에 대해 폭넓게 의견수렴을 벌일 것"이라고 밝혀 여지를 남겼지만 아직까지 사교육시장에서의 선행학습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은 "사교육 규제가 없다면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은 선행학습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좌초할 가능성이 높다"며 반쪽자리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사교육 금지 법제화 난관
지나친 선행학습이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부담을 지우고, 공교육을 왜곡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점은 부인할 사람이 없다.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가가 교육과정을 정하고 교원을 양성하고 임용고시를 통해 검증하는 이유는 교육이 공공성을 갖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현실에선 검증ㆍ관리되지 않는 사설학원이 학교보다 앞서 가르치고 공교육은 뒷전으로 밀리는 공교육 왜곡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선행학습 금지법은 기본권 침해라는 위헌 소지가 있다. 노기호 군산대 교수는 "학생의 학습권은 헌법이 보장한 것이고, 학부모의 자녀 교육권은 기본권 이전의 자연권으로 보고 있어 법률로 선행학습을 규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도 "학생들의 학습욕구를 강제적으로 제어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반대했다.
어디까지를 선행학습으로 보고,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규제의 실효성도 논란거리다. 가령 학년을 뛰어 넘어 EBS 프로그램과 인터넷 강의를 개별적으로 수강하는 것까지 단속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간단치 않다. 조문호 전국보습교육협의회 회장은 "(선행학습을 금지하면) 중3은 고입 때문에 기말고사를 일찍 끝내는데 11월부터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놀아야 하고, 고3은 수능 직전까지 진도를 나가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사걱세는 선행학습이 집중되는 수학 영어 과학 등 일부 과목에 대한 규제는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수학의 경우 학원에서 학교 진도보다 한 학기 이상 앞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영어는 대입 전형에서 학교교육으로 대비할 수 없는 토익 토플 등 공인인증시험성적이나 영어인터뷰·영어에세이 등을 금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학파라치 제도를 활용하고, 학생ㆍ학부모ㆍ교사 등이 신고하면 교육청이 직권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주장했다.
시험 규제만으론 효과 없어
선행학습 금지법이 아닌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 공약은 학교 시험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문제 출제를 규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정해진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을 출제한 학교에 대해 주의조치 등 지도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보다 강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가령 학급수 감축 등 고강도 처벌이 있을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 미칠 불이익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시험 규제만으로 선행학습을 억제하기는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사걱세는 "사교육 업체들이 지금처럼 선행교육 마케팅을 널리 하고 있는 마당에 학교시험을 제재한다고 선행학습이 줄어들겠느냐"며 "공교육을 통해 사교육을 제한하기보다 사교육을 먼저 제한해야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선행학습의 최종 목표는 대입 경쟁이어서 대입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떤 규제도 선행학습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 입시라는 한 가지 길로 아이들이 내몰리기 때문에 선행학습, 사교육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아이들의 다양한 적성을 살려 각각의 길을 갈 수 있게끔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교육계 관계자도 "대입에서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종렬 서울교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더 좋은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는 '대학간 이동권'을 열어줘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대학서열화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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