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는 ‘지역 시장’에 의존해 거래가 이뤄진다. 두바이유처럼 특정 유가가 국제 거래 가격으로 통용되는 석유와 달리, 수송ㆍ저장의 제약 때문에 북미, 유럽,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등으로 시장이 쪼개져 있다. 이런 특성상 천연가스는 가격 수준도,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도 지역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강고하기만 했던 천연가스의 가격구조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제2의 석유로 각광받는 ‘셰일가스’가 에너지 산업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면서 세계 각국도 천연가스의 효용성을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
그 중에서도 아시아 국가들의 움직임이 가장 적극적이다. 아시아에 ‘액화천연가스(LNG) 거래 허브’를 만들어 셰일가스 시대에 대비한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서둘러 LNG 허브 구축에 뛰어든 이유는 북미ㆍ유럽에 비해 불리한 가격결정 시스템 때문이다. 아시아, 특히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 국가들의 지난해 천연가스 수입 규모는 전체의 62.7%를 차지할 정도로 크지만 LNG 현물 도입가는 북미 지역의 최대 6배에 달한다. 북미 지역이 대부분 파이프 라인을 활용해 LNG를 실어 나르는 반면, 아시아 지역은 선박 수송망에 의존해 원가를 절감하기 어려운 탓이다.
또 아시아에 천연가스의 적정한 시장가격을 산정하는 시스템이 전무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북미 시장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상장된 헨리허브(Henry Hub) 선물 가격이 LNG 현물 거래의 기준가로 활용돼 가격 급등락에 따른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벤치마크로 삼을만한 마땅한 가격 지표가 없는 우리나라와 일본은 소요 LNG의 80% 이상을 국제 유가와 연동한 중장기 계약으로 도입하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LNG시장의 흐름과 무관하게 유가움직임에 따라 사실상 높은 프리미엄을 지급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불합리한 가격 거품은 아시아 LNG 허브 조성을 지원하는 여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마리아 반 더 호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아ㆍ태 지역의 천연가스 수요를 감안할 때 LNG 도입가격은 자체적인 수급에 따라 결정될 필요가 있다”며 아시아 LNG 시장의 신설을 지지했다.
국제적 공감대에 힘입어 LNG 허브를 차지하기 위한 아시아 국가들의 물밑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싱가포르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14억 달러를 투자해 연간 600만톤을 처리할 수 있는 LNG 수입터미널을 건설 중이며, 향후 트레이딩을 목적으로 한 시설 확충에도 힘을 쏟고 있다. 기존 아시아 오일 허브로서 축적된 경험과 선진적 제도를 갖춘 점도 싱가포르의 장점이다.
한국정부도 지난해 9월 ‘셰일가스의 선제적 대응을 위한 종합전략’을 발표하며, 한국을 동북아의 LNG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싱가포르에 비하면, 구상발표 외엔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싱가포르에 비하면 입지로 보나, 축적된 노하우로 보나, 거래당사자들의 인지도로 보나 뒤쳐져 있어 자칫 ‘LNG 허브 구상’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아시아 LNG 거래의 중심이 되려면 대규모 저장시설 및 직도입 물량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며 “정말로 LNG허브를 꿈꾼다면 좀 더 체계적으로 좀 더 발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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