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브 커튼, 음바드 싸끄르(솜을 자르고, 헝겊에 붙여야지). 맞아 잘했어."
지난달 30일 오전 9시(현지시간), 아프리카 대륙 최북단에 위치한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동쪽으로 약 110㎞ 떨어진 하맘 르그제즈 마을의 한 초등학교 교실. 서투른 아랍어와 한국어가 번갈아 오가는 가운데 갈색 곱슬머리에 오똑한 콧날, 쌍꺼풀 짙은 21명의 아랍계 어린이들은 한국대학생사회봉사협의회(대사협) 단원들의 손동작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쓰고 버린 종이 계란판과 헌 옷, 솜 등이 멋진 달력으로 변해 가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하다. 교실 창 밖에는 먼저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잔뜩 몰려와 호기심 어린 큰 눈을 반짝이며 재잘거렸다. 교장 선생님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쫓아내 보지만 이내 다시 몰려든 아이들은 봉사단원들과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가 "아슬레마(안녕하세요)"하고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이날 하맘 르그제즈 초등학교에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튀니지 봉사 활동에 나선 대사협 소속 대학생들이 버려진 폐품들을 재활용한 생활용품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보름 가까이 이곳에서 환경미술 수업과 폐 타일을 이용한 모자이크 벽화 작업, 학교시설 보수, 오렌지 나무 심기 활동 등을 벌여온 17명의 봉사단은 현지인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 학교 교장 쟈멜 모아데브(52)씨는 "이곳 사람들은 쓰레기 분리 수거에 대한 개념이 없어 쓰레기를 길거리 등에 마구 버리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긴다"며 "한국 대학생들의 쓰레기 분리수거와 재활용 노력 등 자연을 소중히 대하는 모습 하나 하나가 현지인들과 아이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KOICA와 대사협의 환경보호 활동이 현지에서 더 주목을 받는 것은 2011년 1월 발발한'재스민 혁명' 이후 튀니지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심각한 지역 환경파괴 문제가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대두됐기 때문이다. 특히 환경미화원들의 파업이 잇따르면서 주민들의 쓰레기 무단투기는 공공연히 이뤄지고, 애써 조성된 숲과 자연림이 벌목과 산불로 크게 소실되고 있지만 튀니지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천해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 하맘 르그제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변 습지는 이미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해 있었고 주민들이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벌목한 해변 숲에는 말라 비틀어진 나무 밑동만 흉하게 남아 있었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정부가 사유지를 빌려 50여 년간 마을 인근 야산에 숲을 조성했지만 혁명 이후 지대를 지급하지 않자 땅 주인들이 불을 질러 일주일 만에 400헥타르에 달하는 숲이 사라지기도 했다.
KOICA와 함께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지역 환경보호단체 대표 슈크리 마데브(43)씨는 "한국 자원봉사자들의 열정적인 활동은 현지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자연파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후 지난해부터 라맘 르그제즈에서 봉사활동 중인 이호선(27)씨는"음식과 잠자리, 언어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지만 지역주민들이 봉사단원들의 진심을 따뜻이 받아주는 데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비아(튀니지)=글·사진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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