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의대생 후앙은 1997년 어느 날, 졸업을 1년 앞두고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의 한 고아원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 그곳은 거리의 아이들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대만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건너 온 이민자의 아들인 후앙 역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탄탄대로의 삶이 보장된 상황에서 알 수 없는 공허감과 번민을 느꼈기 때문이다.
거리의 아이들은 영양실조와 에이즈로 신음했고 거리에서 죽어갔지만 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희망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그 땅에서 후앙은 묵묵히 아이들의 운명을 아주 작은 도움과 관심으로도 바꿀 수 있다는 실마리를 발견한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는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선 그의 앞에는 단돈 1달러에 몸을 팔고, 구걸한 돈으로 빵이 아닌 시너를 사는 참담한 광경이 펼쳐졌다. 고름이 흐르는 상처나 성병 후유증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거리의 아이들은 절대 울지 않았다. 대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지 못해 자해 행위를 하거나 마약 중독에 빠져들었다.
책에는 그가 만난 다섯 명의 아이들이 나온다. 그 중 가장 안타까운 사례는 열다섯 메르세데스였다. 삼촌에게 성폭행당하고 집을 나와 매춘을 하던 아이는 200군데가 넘게 면도날로 몸을 그었다. 통증이 몸을 훑고 가면서 전하는 고통으로 공허한 마음을 채워가던 메르세데스는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자해를 가르치다 교사들의 미움을 사는데, 결국 제 발로 고아원을 박차고 나간다. 어린 나이에도 칼을 가지고 다니며 존재를 과시하던 가브리엘은 정비공이 되고 싶다고 했으나 결국 그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열세 살의 매춘부 비키가 짙은 화장을 지우고 감자칩을 팔며 자존감을 찾고 현재는 미용사 수업을 받으며 사는 등 변화한 모습은 가느다란 희망이다.
이 책은 현실의 민낯을 투박하게 기술하지만 극적으로 다가온다. 저자 후앙은 "전세계 거리의 아이들 1억 명을 모두 구할 수는 없지만 한번에 한 명씩은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비영리 기관 국제카야어린이단체를 설립해 볼리비아에 고아원을 짓고 아이들을 위한 자립센터를 운영하는 등 미국과 볼리비아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