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거래가 이렇게 뜸했던 적은 처음입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6동에서 11년 간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해 온 이모(58)씨는 요즘 죽을 맛이다. 이씨가 지난해 성사시킨 거래 건수는 불과 4건. 3억3,000만원짜리 아파트 한 채 매매와 2억원짜리 아파트 세 채 전세가 전부였다. 사무실 임대료가 월 200만원인데 연 수입은 612만원에 그쳤다. 2008년 한 달에 15건의 매매 거래를 성사시켰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구거리에 있는 가구 소매점들의 매출도 2008년에 비해 30~50% 줄었다. 66㎡ 규모의 가구점을 운영하는 김모(52)씨는 "매장 임대료와 각종 비용을 제하면 집에 가져가는 돈이 월 200만원도 안 된다"며 "인건비와 생활비를 줄이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1960년대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후 50여 년간 지속돼 온 부동산 생태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 거래량이 계속 줄어들면서 공인중개사와 인테리어업체, 이삿짐센터 등 주택거래 관련 생계형 업종에 종사하는 서민들이 한계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업종 종사자는 약 70만 명으로 추산된다.
31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매매 건수는 73만5,414건으로 전년보다 25%나 급감했다. 2006년 이후 6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그나마 정부가 빈사 상태에 빠진 부동산경기를 살리기 위해 작년 9월 취득세 감면 등 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 거래량이 다소 늘어난 결과다. 지난해 아파트 매매값은 전국 평균 2.88% 떨어졌다.
주택 거래량은 내수 활성화와 직결된다. 주택 거래가 활발하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인중개업소, 이사업체 등 생계형 자영업자의 일감이 늘어난다. 지난 50여 년간 주택 거래량 증가 → 연관 자영업 일자리 증가 → 소득 증가 → 내수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가 잘 맞물려 돌아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급속한 고령화와 금융위기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 탓에 주택 거래가 실종되면서 이런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공인중개사들은 사무실 임대료라도 벌기 위해 야간에 대리운전을 하는 등 부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엔 공인중개사협회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지역별로 공인중개사의 수를 제한하는 쿼터제를 도입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장사가 안 돼 연간 2만여 곳이 폐업하는데도 연간 2만명의 신규 등록자가 생기고 있으니 진입장벽을 만들어 달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직업선택의 자유를 해친다는 반론이 만만찮아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포장이사업체들은 이미 '제살 깎아먹기'식 저가경쟁 탓에 2008년 대비 매출이 반토막 났다. 더욱이 최근 연예인 이름을 빌린 포장이사업체들이 하나 둘씩 시장에 진입하고 있어 앞날은 더욱 불투명하다. 가구 소매점들 또한 인터넷 판매 등으로 활로를 모색 중이지만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온라인 전문 판매점과 아울렛 형식의 대형 가구점이 수도권 외곽에 속속 들어서고 있어 갈수록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은 "거래 활성화 외에는 당장 해법이 없기 때문에 작년 말 종료된 취득세 감면 등 매매 수요를 위축시키고 있는 정책 걸림돌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변창흠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가격 폭등 시대를 대체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배민권 인턴기자(서강대 경제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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