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 PC방에서 탈북자 김모(28)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26시간을 PC방에서 보낸 김씨가 요금 2만4,800원을 내지 않자 업주가 신고한 것이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 그날 외투 없이 달랑 니트만 한 장 입고 있던 김씨는 “PC방이 따뜻해서 오래 머물렀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씨는 2006년 12월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이듬해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초ㆍ중등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탈북자 대안학교에도 진학하는 등 안정된 삶을 이어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김씨는 2년 전 정부 지원금으로 입주했던 임대주택에서 거리로 나앉았다.
김씨의 지인은 “그가 생활비 유흥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임대하면서 노숙하게 된 듯해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씨는 편의점, 식당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따뜻한 보금자리를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른바 ‘꽃제비’였다가 홀로 탈북한 그였기에 한국에서 기댈 만한 버팀목도 없었다. 그 후로 그는 수도권 일대를 배회하며 노숙하다 한파가 몰아칠 때면 PC방을 전전했다.
김씨에게 같은 종류 전과가 9차례나 있음을 확인한 서울 성동경찰서는 일단 그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정한 주거지 없이 홀로 떠돌아다니는 김씨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 탈북자 취업 지원 기관과 함께 수소문한 끝에 김씨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급여를 주겠다는 한 의류업체를 찾았다.
경찰에게서 사정을 전해 들은 검찰도 이례적 조치를 취했다. 서울동부지검은 31일 검찰심의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김씨의 구속을 취소하고 기소유예 처분하기로 의결해 김씨를 풀어 줬다.
김씨 사건을 맡은 담당 검사와 수사관들은 그의 수배를 풀어 주기 위해 벌금 45만원을 대신 내고 점퍼 하나 없는 그에게 두툼한 점퍼와 목도리까지 선물했다. 동부지검장도 선뜻 지갑을 열어 무일푼인 그에게 30만원을 건넸다.
김씨는 “새터민으로 한국에 올 때 제가 원하던 그림이 있었는데 언제부터 나도 모르게 사라졌다”며 “다시 제게 기회가 온 만큼 새 출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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