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최태원에 대해 465억원의 펀드 출자금을 사적 용도로 사용한 범죄사실이 유죄로 인정됩니다."
31일 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가장 큰 혐의였던 펀드 출자금 부분이 유죄로 인정되자 최 회장은 실형을 예감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불과 몇분 전까지만 해도 그룹 임직원들과 미소를 띤 채 인사를 주고받았던 그였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이날 선고 공판에서 최 회장은 여러 차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재판부와 검찰을 지그시 바라보기도 했다. 예상보다 중형이 선고될 것 같은 분위기에 변호인 측도 충격에 휩싸였다. 일부 변호인들은 황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은 전부 무죄가 선고됐지만 자신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던 혐의들이 전부 형의 죄로 결론지어지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 부회장은 당초 구속 기소까지 됐고, 검찰 구형에서도 최 회장(징역 4년)보다 높은 징역 5년이 구형됐었다. 재판 후 최 부회장은 취재진을 헤치고 도망치듯 법원을 빠져나갔다.
최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확실시되자 SK 임직원들로 가득 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절반 이상은 아예 고개를 떨궜다.
선고 후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최 회장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마이크를 잡고 한동안 뜸을 들이던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저는 정말 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에 대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알았고, 이 일에 인볼브(관여)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것은 단지 그것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선고를 앞두고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출입구는 낮 12시쯤부터 몰려든 SK 임직원과 방청객, 취재진으로 붐볐다. 입장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방청객들은 새치기를 하지 말라며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오후 1시30분쯤 법원에 도착한 최 회장은 SK 임직원 20여명의 경호를 받으며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법정으로 향했다. 법원의 사전 협조를 받아 최 회장은 혼잡한 일반 출입구 대신 법관 통로를 통해 법정에 들어갔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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