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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서울의4개언어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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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서울의4개언어 안내판

입력
2013.01.3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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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보면 거리의 간판을 통해 한글공부를 했던 것 같다. 길을 걷고 버스를 타면 창밖으로 스치는 간판들을 무심코 읽어가던 기억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이 스스로 이정표의 글자를 읽어낼 때,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럴 때면 신이 나서 이정표에 관련된 설명을 곁들이며 흐뭇해했다. 간판은 그렇게 우리말과 문화를 읽어내는 중요한 학습 자료이다.

그런데 도로표지판, 보행자 안내표지판, 도로명 주소 도로 명판, 버스 지하철의 교통수단 안내 표지판까지, 서울시 안내판이 모두 국어·영어·중국어·일어 4가지의 언어로 바뀐다고 한다. 먼저 명동, 종로, 동대문, 잠실, 이태원과 북촌한옥마을, 남산공원 등 외국인 방문빈도가 높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교체하고,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정비할 계획인데, 이유는 외국인의 관광 편의를 높이기 위한다는 것이다.

글자는 읽기 위한 힘을 이끌어 내고, 그 힘은 관심에서 자라난다. 서울시의 약 14만개의 안내 표지판이 4개 언어로 표기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한글이 다른 언어와 동등한 위치의 언어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글의 유일한 지위가 잠식되어 가는 것이다. 아직 한글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말이다. 말은 정신이고 문화이다.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말과 글을 궁금해 하게 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관광객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그들의 눈에 비친 한글 간판은 다른 나라에 왔다는 차이를 느끼게 하고 연이어 낯선 곳에서의 설렘을 접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언어적 차이에 의한 불편함은 다른 나라에 있기 때문에 감수할 몫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곳, 익숙하지 않은 곳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연신 지도를 들여다보거나 사람들을 붙들고 질문을 하여 길을 찾는 것도 모험이자 묘미이다.

낯선 언어들이 불편하지만 눈으로 익히려 애쓰는 만큼 기억도 오래 남는다. 그러다 관광객들이 밀집되는 지역에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와 같은 그들의 언어를 만난다면 기쁨은 배가 되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관광의 불편함을 묻는다면 언어장벽에 의해 길 찾기가 어렵다고 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공공안내표지판을 4개 언어로 만들어 준다면, 그 다음엔 또 어떤 것을 4개 언어로 표기하여 편의를 제공할 것인가.

또한 간판을 4개 언어로 표기해야 한다면 그 면적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글자가 아무리 작게 들어간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가독성 때문에, 작게 만드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간판과 같은 인공물은 최소한의 수량과 가독이 가능한 최소한의 면적으로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한다. 즐비하게 세워진 커다란 간판들은 다른 시각적 요소들을 차단하기도 하고, 많은 정보를 담은 간판은 시각적 피로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에 제도적으로 획일화하여 4개 언어 안내표지판을 세우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외국인에 대한 편의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면 그들의 관광 동선을 면밀하게 추적하여 그 지역에만 편의를 제공하길 바란다. 굳이 관광노선과 관련 없는 서울시 구석구석 조용한 주택가까지 생소한 언어들의 안내표지판으로 우리의 문화를 바꾸고 싶진 않다.

한글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민들 사이에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자 23년 만에 한글날이 휴일로 재지정 되었고, 한글공원도 만들어졌으며,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조선어학회 선열 추모탑과 주시경, 헐버트 동상을 세우는 등 세종대로 중심의 한글 마루지를 조성해가고 있는 시점이다.

관광객을 위한 편의라는 것도 탄력적으로 필요한 곳에 제공되어야 한다. 획일화 될 때, 그 가치가 사라진다. 그냥 당연해지는 것이다. 친절한 4개 언어 안내 표지판이 이 도시를 덮으며 우리의 주체성까지 친절하게 양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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