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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기여" 더 이상 안 통해… 사법부 바꾸는 경제민주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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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기여" 더 이상 안 통해… 사법부 바꾸는 경제민주화 바람

입력
2013.01.3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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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31일 법원의 선고 결과는 지난해부터 나타나고 있는 재벌기업 총수에 대한 법원의 무관용 원칙이 재확인된 사례라는 것이 중론이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모자를 법정구속했고, 앞서 8월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번 판결은 그간 재벌 총수의 경우 횡령이나 배임 범죄로 기소되더라도 법원이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를 들어 풀어주던 관행의 고리를 단절해가고 있다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종전 재벌 총수들은 1심이나 항소심에서 어김없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이 나와 '정찰제'라는 비아냥까지 받았다. 사회정의를 지키는 보루여야 하는 법원이 오히려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특히 최 회장의 경우 재계 서열 3위인 SK 그룹을 이끄는 총수라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향후 대기업 총수 관련 범죄에 있어 사법부의 대응 기조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같은 변화는 지난해 총선을 전후해 경제민주화 의제가 사회적 담론으로 강력하게 부상하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사법부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또 법원이 기존의 '고무줄 양형'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법부 개혁의 일환으로 양형기준을 마련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최 회장에 대한 판결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재판장인 이원범 부장판사가 이날 "대기업의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일반인보다) 양형을 불리하게 받는 것에 동의할 수 없듯이, 같은 이유로 총수의 형사책임을 경감해주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못박은 것은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직후인 8월31일 부산에서 전국 형사법관들이 연 형사법관 포럼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대기업 총수에 대한 정찰제 판결이라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 엄격한 양형을 할 필요성이 있다"는 쪽으로 참석자들의 뜻이 모아졌고, 이 같은 의견은 전국 법관들에게 전파됐다. 이원범 부장판사는 당시 포럼을 주관한 사회자이기도 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 직전 이례적으로 "재벌 총수 범행에 나타난 모든 양형인자를 종합적 합리적으로 평가해 합당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기업인에 대해 불이익도 특혜도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도 앞으로는 대기업 총수라고 해서 특혜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정착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날 판결 후 "대다수 형사법관들이 이번 판결을 지켜봤다"며 "재벌 총수에게 불이익도 이익도 주지 않는다는 일반론이 정답이라는 판결에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도 "SK 재판은 향후 진행될 재벌 총수 재판의 양형에 암묵적인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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