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개인 투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최태원(53) SK 회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하지만 기소 당시 범행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던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50) SK 수석부회장은 오히려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원범)는 31일 계열사 자금 465억원을 빼돌려 펀드 출자용 선지급금으로 위장한 뒤 개인적으로 선물투자를 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기소된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SK 재무팀 담당자가 펀드와 관련해 작성한 문서 등 객관적 증거와 핵심 관계자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에 비춰 선물투자에 사용된 자금에 대한 지시 및 사용 주체는 최 회장으로 판단된다"며 "자신이 자금 유출을 지시했다고 자백한 최 부회장의 진술은 펀드 출자의 경위나 자금 사용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자신이 지배하는 기업을 범행 수단으로 삼아 사적인 목적에 활용하는 기업 사유화의 단면을 극명하게 표출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대법원 재판예규가 규정한 예외 인정 사유가 없는 이상 실형을 받은 최 회장을 법정구속함이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계열사 임원에 대한 추가 보너스를 반환시키는 방법으로 139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유용한 혐의에 대해서는 "직접 지시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이 이날 최 회장을 법정구속한 것은 재벌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형을 감경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SK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 계열사가 받을 충격,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신중을 기했다"며 "대기업 총수라는 이유로 재판 과정에서 혜택을 받지 않았듯이 같은 이유로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양형인자만 고려해 합당한 형을 정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선고 직후 "제가 무엇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하지 않았다.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단지 이것 하나다"라고 말하고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최 부회장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황급히 법원 청사를 빠져나갔다. SK 측은 "무죄 입증을 위해 성심껏 소명했으나 인정되지 않아 안타깝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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