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뮤지션 소설 번역이 계기 "이야기 짓는 재미에 푹 빠져 거의 모든 작품 하루 만에 초고"우주선 탐사원 얘기 '행성이다' 등 화학·생명공학 전공 이력 녹여"호평이든 혹평이든 상관안할 것 시도 쓰지만 출간할 수준은 못돼"
언젠가 이 사람이 시집이나 소설집을 낼 거라고 짐작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노래하는 음유시인 루시드 폴(38ㆍ본명 조윤석)이 소설집 (나무나무)를 냈다. 시(詩)에 가까운 가사를 짓고 서정적인 선율의 곡을 만들어 직접 기타를 치면서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노래하는 루시드 폴은 마니아층이 두터운 싱어송라이터다. 노래만큼이나 노랫말도 잘 써서, 2008년 노래 가사집, 2009년 마종기 시인과의 서간집을 냈을 때 출판계 편집자나 프로 작가들도 그의 책 출간을 객기나 호기로 생각하지 않았을 정도다. 그는 스위스 로잔의 연방공과대학(EPFL)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과학자 출신 뮤지션으로 데뷔 후 몇년 간 주목받기도 했다.
31일 신사동 기획사에서 만난 그는 "브라질 뮤지션 쉬쿠 부아르키 (Chico Buarque)의 장편소설 를 번역하다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부아르키 소설은 스위스 유학시절에 본 건데, 제가 번역을 하고 싶다고 기획사에 말해서 6, 7년 전부터 번역해 온 작품이에요. 작년 번역을 끝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구상하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장편소설을 썼어요."
하지만 취미 삼아 쓴 소설을 출간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무수히 뜯어 고쳤단다. 자신의 일상에서 모티프를 딴 '기적의 물', 유년시절 경험이 담긴 '애기' 등 저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소설에 녹아있다. '횡성'으로 떠난 우주 연구원 엄마를 만나기 위해 우주선 탐사원에 지원하는 안드레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행성이다'는 화학과 생명공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이 십분 발휘된 소설. 그는 "초국적 공간을 만들어야 상상력의 폭도 더 커질 것 같아 주인공 안드레를 비롯해 인물들 이름을 프랑스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어원으로 지었다"고 말했다. 장소, 국적, 시대, 동네 등 특정한 시공간을 피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소설집 제목을 '무국적 요리'라고 붙였다.
그는 소설집 마지막에 실은 '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품을 하루 만에 초고를 쓸 정도로 지난 한 해 이야기 짓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그는 "상상하고 싶은 대로 상상하고, 쓰고 싶은 대로 쓰지만, 기대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잘 썼다는 말에 우쭐해하지 않고, 형편없다는 말에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시드 폴은 특유의 겸손한 자세로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국내외 시인들과 젊은 평론가까지 다양한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소설보다 시 읽는 걸 좀 더 좋아한다"며 작년부터 노래 가사와 별도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사 쓰는 게 언젠가부터 좀 답답했는데 노래라는 프레임에 갇힌다는 느낌이 들었죠."
가끔 마종기 시인에게 이메일로 시를 보내 감상평을 듣지만, 아직 시집으로 묶지는 못할 것 같단다. 시 쓰기와 소설 쓰기가 "짜장면과 짬뽕만큼, 피아노와 기타만큼 다르다"며 "소설은 위장의 요소가 있지만, 시는 저자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르라 웬만큼 자신이 없으면 시집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집은 이렇게 단정한 저자의 태도와 발랄한 노랫말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단기간에 한 권을 써냈지만, 허투루 쓴 작품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는 "소설이 좋다라는 말보다 재미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더 뿌듯하다"며 "소설집을 내고도 단편소설을 한 편 더 썼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